[사설] 권역응급센터 지정 취소 내심 반기는 현실

[사설] 권역응급센터 지정 취소 내심 반기는 현실

입력 2016-10-21 17:52
수정 2016-10-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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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전북대와 전남대병원의 권역응급의료·외상센터 지정을 취소했다. 지난달 두 살배기 교통사고 환자가 제때 응급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데 따른 징계다. 환자가 처음 이송됐던 전북대병원은 중증 외상 환자를 맡아야 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였다. 복지부가 조사했더니 당시 유방 재건 수술을 하느라 사경을 헤매는 어린 중환자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명색이 의료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새삼 부끄럽다.

현장의 판단도 문제지만 당시 전북대병원은 권역응급센터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었는지 궁금하다. 두 살배기 환자의 골반과 장기 손상이 심각했는데도 정형외과 전문의는 호출되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가 제대로 평가됐을 리 없다. 전원(병원을 옮기는 것) 의뢰 과정에서도 허점이 많았다. 중앙전원조정센터에 문의하면 신속히 전원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전공의가 일일이 다른 병원에 전화를 걸며 시간을 허비했다. 전원 체계의 기본도 몰랐던 셈이다. 그러니 덜 급한 환자의 수술실을 비우는 적극적 조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복지부의 센터 지정이 취소되면 이들 병원은 보조금이 끊긴다. 개선 작업을 거쳐 6개월 뒤 재지정 신청을 할 수 있지만 병원들은 오히려 지정 취소를 반긴다는 얘기가 들린다. 정부 지원을 받아 외상센터를 운영해 봤자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만하다. 정부는 중증외상센터 지정 조건을 규정하고 있지만 의료진을 어떻게 구성하라는 구체적인 지침도 없다. 수술실을 확보하더라도 수술할 의료 인력이 제대로 확충되지 못한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중증 외상환자 사망률은 미국이나 일본의 두 배다. 충분한 준비 과정 없이 2012년 이후 전국에 15곳의 외상센터가 들어설 때 예산만 공중분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걱정이 현실이 돼 있다. 정부의 즉흥 해법으로는 응급 환자들을 제도적으로 구제하기 어렵다.

전원조정센터의 조정 기능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무엇보다 현장 의료진의 이해도를 함께 높여야 한다. 전원 핫라인 직통 번호조차 공유되지 못해서야 정부는 헛돈만 들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최소한 응급 환자를 놓고 의료진이 우왕좌왕하는 모습부터 보지 않게 해야 한다. 전원 환자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는 등 정부와 의료계가 제도 개선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2016-10-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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