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 고령화시대와 은퇴자 출가제도/정웅기 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

[In&Out] 고령화시대와 은퇴자 출가제도/정웅기 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

입력 2017-06-06 20:54
수정 2017-06-0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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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기 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
정웅기 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
조계종이 ‘은퇴 출가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출가 연령을 50세 이하로 제한하던 것을 특별규정을 두어 51~65세의 늦깎이도 출가할 수 있도록 완화한 것이다. 조계종은 고령화 사회에 맞춰 은퇴자에게 수행과 보살행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그 배경에는 출가자 급감에 대한 위기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조계종의 한 해 출가자 수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400명선을 유지하다가 계속 줄어 지난해에는 200명이 채 안 될 정도이다. 65세 이상이 전체 승려 수의 70%에 달할 만큼 고령화 양상도 가파르다. 그 위기의식으로 중앙종회에서 고심과 토론 끝에 이 제도를 만들었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첫째, 과연 은퇴자들이 고된 예비승 제도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큰 절에서는 행자와 사미승이 밥하고 청소하는 등 궂은 살림살이를 도맡아 한다. 육체적으로 고되기 때문에 못 견디고 환속하는 이도 적지 않지만, 출가수행자들은 이 기간 하심하고 비우는 법을 집중적으로 익히게 된다. 환갑이 넘은 이들이 이런 과정을 육체적·정신적으로 견뎌 낼지 의문이다.

둘째, 법납 위주의 공동체 질서가 흔들리지 않을까의 우려다. 승가공동체는 세속 나이를 불문하고 출가를 기준으로 한 법의 나이(법납)를 우선해 왔다. 고령 출가자가 훨씬 늘어나게 되면, 유교질서가 뿌리 깊은 한국사회에서 불교 고유의 공동체 질서는 더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40대 은사가 60대 제자를 엄하게 가르치거나, 20대 젊은 행자가 아버지뻘 동료 행자를 친구처럼 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세속화의 우려다. 늦깎이 출가자는 이것저것 다 경험한 후 출가하기에 거친 욕망에 빠질 위험이 적고, 출가수행자의 본분을 지키는 일에 전념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체화된 세속 경험과 고정관념을 버리기도 쉽지 않다. 심각해지는 세속화를 부채질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넷째, 평등권 시비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은퇴 출가자들은 정식 승려가 돼도 일체의 선거권·피선거권을 가질 수 없도록 제한했다. 주지 취임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무는 있되 권한은 없는 특수직인 셈이어서 차별에 따른 평등권 침해 시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몇 가지 염려에도, 은퇴자 출가제는 고령화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은퇴자들이 출가의 문을 얼마나 두드릴지, 설혹 의도대로 숫자가 늘어난다 해도 그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출가자 수를 양적으로 유지하는 데 방점이 찍힌 이 정책에 근본적 의문을 가진 이도 적지 않다. 차라리 출가자는 소수 정예화하고, 재가자의 종단 참여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조계종 승려가 운영하는 사찰, 암자 수는 줄잡아 3000여개(미등록 포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만여 승려 가운데 거소가 파악되는 분한신고자는 7000~8000명이고 그 가운데 선방 등에서 정진하는 2000~3000명을 빼면 5000여 남짓의 출가승려만으로 운영하기엔 사찰 수가 너무 많다. 대중이 모여 사는 큰 절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찰이 주지 1인 중심의 독살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승가 고유의 공동체 전통은 더 쇠퇴할 것이다.

은퇴자 출가제는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탈종교화의 거센 파도에 대비하기엔 불완전하고 미비한 점이 많다. 지금은 출가승단을 중심으로 불교공동체를 지켜온 오랜 전통마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더 큰 밑그림이 나와야 할 것이다.
2017-06-0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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