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사회2부 부장급
하지만 아시안게임은 유치 환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인천의 눈물이 됐다. 단제장 치적 홍보를 노린 무리한 국제경기 유치가 부메랑이 된 것이다. 사업비가 2조 1175억원에 달해 인천시 재정난의 ‘몸통’이 됐고, 시민단체들이 아시안게임을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는 애물단지가 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만큼 아시안게임은 더욱 성공적으로 치러져야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증오와 갈등을 잠시 내려놓고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 남북 및 보혁 간의 갈등 표출 또한 이 기간만큼은 자제해야 한다. 손님을 모셔놓고 집안 싸움을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자칫 이번 아시안게임이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의 장(場)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9년 만에 우리나라에 온 북한 선수단을 둘러싸고 보혁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회가 열리기 직전 고양종합운동장 주변에 걸려 있던 북한 인공기에 대해 보수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당국은 인공기를 포함한 45개 참가국 국기를 모두 철거했다. 유례가 없는 데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규정에도 어긋난다.
진보단체들은 북한 응원단 파견이 무산되자 지난 20일 시민·학생 5000여명으로 북한팀 응원단을 구성한 데 이어 구체적인 응원 계획을 세웠다.
경찰이 긴장하는 부분도 이들의 북한팀 응원과 이에 맞서는 보수단체 간의 대결 양상이다. 요즘 보수와 진보는 구실만 생기면 사사건건 층돌하고 있다. 광복 이후 사회상 못지않게 첨예한 진영 구도가 형성돼 있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한쪽이 집회를 열면 다른 쪽은 맞불 집회로 딴죽을 거는 행위는 이제 공식처럼 됐다. 인천에선 맥아더동상 철거 문제로 보수·진보세력 간에 물리적 충돌을 빚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돌과 죽봉 등을 동원해 죽기 살기로 싸웠다.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이 시대의 열혈지사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했다. 무생명체인 동상과 국기를 놓고 충돌하는 마당에 민감한 사안인 북한 응원을 빌미로 어떤 마찰을 빚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보수 가운데 극우로 기울어진 집단은 자신들의 신념과 정서에 반하는 일이 생기면 단세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체질화돼 있다. 북한 선수들에 대한 응원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면 됐지 부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북한 얘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아시안게임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스포츠 행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kimhj@seoul.co.kr
2014-09-22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