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신윤복 ‘미인도’, 18세기, 비단에 채색,114×45.5㎝, 간송미술관.
윤두서의 ‘채애도’부터 여성 그림이 늘었다. 풍속적 요소를 반영한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좀더 초상화에 가까운 여성화가 그려진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서양화법이 가미된 채용신(1848~1941)의 ‘운낭자’는 여러 모로 ‘미인도’와 비교된다. 실제 초상화는 아니지만 얼굴이 훨씬 구체적이라 특정한 개인을 모델로 한 것처럼 보인다.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은 매우 긍정적이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자세는 당당하다. 신윤복의 미인과 채용신의 운낭자는 치마저고리의 색도 비슷하고, 왼쪽 버선발을 슬며시 치마 밖에 내놓은 모습도 같다. 하지만 두 여인의 인상은 전혀 다르다. 화가의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채용신 ‘운낭자’, 1914, 비단에 채색, 120.5×61.7㎝, 국립중앙박물관.
채용신은 1914년 운낭자가 27세이던 때를 상상해 이 그림을 그렸다. 뒷면에 채색을 해 색이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 등 전통 화법과 옷주름의 음영을 살린 입체감, 사진처럼 세밀한 묘사 등 서양화법을 접목해 초상화에 근대로 향하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 건강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은 기독교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을 떠올리게 한다. 신윤복의 그림이 기녀를 향한 내밀한 감상이라면 채용신의 그림은 심지 굳은 대중의 어머니와 같다. 같은 기녀임에도 개인의 은밀한 관찰과 사당에 걸기 위한 공적 인물 묘사는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았다. 분명 여성을 대하는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2020-07-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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