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관위 서버 검증했더라면
혐중 맞물린 불신 위험수위
선거제도 불신은 민주주의 위기
선거시스템 개선 계기 삼아야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일 윤석열 대통령 측의 중앙선관위 서버에 대한 두 번째 감정 신청을 기각했다. 설사 부정선거 의심 증거가 있다 한들 그것이 계엄 선포를 정당화할 사유가 되지는 못하므로 관련 자료들은 심리에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2022년 ‘가짜 투표지’ 관련, 선거무효소송에서 “실체가 없다”고 판시했다.우리나라의 투·개표는 ‘실물 투표’와 ‘공개 수작업 개표’ 방식으로 진행된다.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하지만 전자개표와는 다르며, 외부와의 통신 자체가 단절돼 있어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돼 있다. 국가정보원도 윤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23년 7~9월 선관위 전산시스템에 대한 보안점검을 실시했으나 외부 해킹으로 인한 선거시스템 침해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보안점검을 주도했던 백종욱 전 국정원 차장은 지난 11일 헌재 탄핵심판에 출석해 “선관위 전산시스템의 보안관리가 부실했고, 인터넷망과 업무망, 선거망이 분리되지 않아 외부 침투 가능성이 있었다”고 했다. 선거시스템이 공격당하면 사회 혼란이 초래될 수 있어 시급히 취약점을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전체 장비 중 5%를 점검했는데, 외부인이 침투한 흔적을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국회 측은 반대신문에서 “수많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참관인이 투개표에 참여하고 수개표를 한다”, “정보시스템 기계장치는 보조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가 조작돼도 사람들 눈을 피해 실물 투표지 바꿔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번 기회에 헌재가 중앙선관위 서버에 대해 공개 검증을 받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윤 대통령은 국정원이 선관위 전산 장비를 점검한 결과 문제가 많이 발견됐고, 그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선관위에 군 투입을 지시했다고 했다. 물론 그런 정도의 의혹이 군을 동원해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계엄 선포까지 정당화해 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부정선거론이 대통령의 계엄까지 촉발할 만큼 저변에 확산돼 온 것도 현실이다.
중앙선관위가 해킹을 당하고 그 배후에 중국 간첩이 있다는 식의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전에도 친필 메모를 통해 ‘권위주의 독재국가가 국내 정치세력과 손잡는다’며 중국을 부정선거와 연계시키는 듯한 인식을 내비쳤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멸공 페스티벌’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무효”와 함께 “CCP(중국공산당) 아웃”, “시진핑 아웃”을 외쳤다. 구체적 근거 제시 없이 혐중 정서를 파고드는 부정선거론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선관위 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이 체포됐다’는 내용의 일부 매체 보도에 선관위도, 주한미군사령부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래도 여전히 사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달 21~22일 실시한 케이스탯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43%가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특히 사전투표 조작설은 나름 전문성이 있다는 인사들이 ‘대수의 법칙’까지 들어가며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유튜브가 적잖이 유포돼 있다.
선거제도가 불신의 늪에 빠진다는 건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다. 탄핵 찬반으로 국론이 갈린 상황에서 만일 탄핵 결정으로 조기대선을 치렀는데 패배한 측에서 선거부정 의혹을 들며 승복하지 않는다면 국민통합에 상당한 어려움이 초래될 것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강성보수층 결집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도층을 끌어안는 데는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음이 여론조사 결과로도 나타난다. 결국 부정선거 음모론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조직적 선거부정이라기보다는 ‘소쿠리 투표’처럼 일부 관리 부실의 문제가 거대한 음모론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음모론을 방치할 경우 어쩌면 ‘탄핵의 강’보다 정치공동체에 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불식될 수 있도록 차제에 선거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조금이라도 우려되는 점이 발견된다면 이를 보완, 개선했으면 한다. 탄핵 여부에 관계없이.
박성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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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2025-02-14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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