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술 자랑/서동철 논설위원

[길섶에서] 술 자랑/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입력 2015-02-15 17:54
수정 2015-02-16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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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를 최근에야 읽었다. 북학파의 대표 주자로 새로운 문물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뛰어난 감수성은 듣던 대로였다. 그런데 읽는 재미를 더해 주는 것은 매일이다시피 등장하는 술 얘기였다.

특히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궁이 있는 열하(熱河)에서 술 먹은 이야기는 압권이다. 연암은 술집에 들어가 호기롭게 술을 시켰다. 탁자 위의 작은 잔을 올려 놓자 담뱃대로 쓸어 버리고는 커다란 사발에 술을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독한 백주(白酒)였을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중국인이 술 석 잔을 따라 마시기를 청하자 연암은 다시 큰 사발에 모두 붓고는 한꺼번에 마셔 버렸다는 것이다. 연암은 “저들에게 겁을 주려고 일부러 대담한 체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런 게 바로 술 자랑이다. 술 마시기 한참 좋은 43세의 연암이었다.

술 자랑이라면 나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술자리에서 도망가는 일이 없었으니 술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마침내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술 망신이었다. 사행길부터 십몇 년이 더해진 내 나이의 연암이 여전히 술 실력을 뽐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5-02-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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