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머물러 있기/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머물러 있기/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7-08-11 23:06
수정 2017-08-12 01:3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다만 며칠 떠났다 돌아와도 살던 집이 낯설다. 현관 문턱이 한 뼘은 도드라져 보이고, 모서리의 탁자는 생뚱맞다. 함께 지낸 말 없는 생명체들이 완강히 제 목소리를 내는 흔적도 새삼 목격한다. 얌전하던 화분의 벤자민이야말로 석 달 열흘 빗질 안 한 쑥대머리. 발이 묶인 생명들은 치근대는 사람이 옆에 없을 때 더 분방하게 자라는가도 싶다.

시시한 일상의 무사(無事)를 확인하고 안도하기. 여행의 한 줄 깨달음은 언제나 돌아온 집에서 발견한다. 멀리서 번다하게 눈 귀로 챙겨 온 것들은 집 마당에도 다 있었다. 팔월의 등짝에 매달려 사생결단하는 매미, 늦여름 땡볕에 몸 말리는 나무, 저 혼자 우뚝우뚝 높아 가는 하늘. 그러니 여행의 종착지는 마지막 여행지가 아니라 집에 돌아와 차 한 잔을 마시는 이 순간이다.

시인 목월은 중년의 한때 ‘앉아 있기’가 좌우명이었다. 싱겁지만, 세상의 부화뇌동에 흘려보낸 시간을 심각하게 반성하노라며 어느 글에서 썼다. 머물 줄 알면 더 크게 열리는 눈과 귀.

머물러 있기보다 더 황홀한 사치, 강렬한 지혜가 없다는 생각이 나도 문득 든다. 앉아서 환한 꽃나무처럼.
2017-08-12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