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엽관제 유령을 물리칠 퇴마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엽관제 유령을 물리칠 퇴마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2011-07-05 00:00
업데이트 2011-07-05 00:2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윌리엄 화이트는 조직철학자이다. 그는 1956년 불후의 명작 ‘조직인’(The Organization Man)을 남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 군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인간은 조직을 떠나 살 수 없다. 평생을 조직 속에서 살다가 조직의 일원으로 죽어간다.

이미지 확대
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조직에 매몰되어야 한다. 또한 조직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수용하는 길만이 성공이 보장되는 길이다. 화이트의 조직인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典型)이었다. 책이 출판될 당시 미국인의 삶의 모습은 조직인 그 자체였다. 미국 대중의 의식과 공감대를 형성한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1970년대에 들어와 로버트 실버맨과 헤밍은 ‘조직인에서의 탈출:전문인으로의 진입’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화이트의 조직인을 비판한다. 조직인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상일 뿐이며, 조직인으로서의 사고로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전문성을 역설한다.

실버맨과 헤밍에 따르면 전문인은 조직의 틀을 벗어나 활동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조직에서 일을 하지만 전문영역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만든다. 같은 전문인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필요하면 협의체를 만들어 함께 일함으로써 개인과 조직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한다. 대우가 좋지 않으면 전문인은 스스로 만든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그 조직을 떠난다.

전문인은 21세기에 들어와 창조적 전문인(creative professional)으로 진화한다. 전문지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전문가만이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의 도래를 주장한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바로 그다. 그는 21세기에는 전 세계에서 1000만명 정도의 창조적 지식인이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는 이들을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이라고 지칭한다.

조직인, 전문인, 창조적 전문인 같은 시대적 소명을 묘사한 인간관은 인사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시대를 이끄는 인재 발탁의 전범(典範) 역할을 하는 정부 인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야 공기업 등 정부 산하기관에서도 보고 배우며, 민간 영역에서도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마디로 조직인의 인간상을 뛰어넘는 인사를 찾기 어렵다. 전문성보다는 지근거리 인물만 보인다. 전문성 없는 사람을 장관에 발탁하여, 공무원은 이들의 교육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다. 정치권은 더 한심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조직 내에서는 유력 인사에 맹종하는 인물만이 득세한다.

능력 있는 인물의 정치권 영입보다는 유력 인사에 줄서기 순으로 정치인 충원이 이루어진다. 정·관(政官) 인사가 이 정도이니 대한민국에 창조적 지식인이 설 땅이 너무나 좁다.

현 정부는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걱정하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권력누수 현상도 정권 담당자가 자초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자성보다는 관료사회를 향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국가 현안, 부처 간 갈등, 혹은 사회적 쟁점이 되는 문제에 적극 나서기 그리고 사정기관을 동원하여 공무원 기강잡기를 주문한다.

정실인사를 최소화하고, 실적 중심 인사를 해왔으면 권력 누수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가 권력을 잡든 정실은 다를지라도 실적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실인사가 다음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닐 듯하다. 내년은 사계절 모두가 근래 보기 드문 정치의 계절이라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줄서기가 난무하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전문성도 없는 인물이 줄서기 순에 따라 우수수 요직에 입성하고, 그로 인해 흔들리는 공직사회의 폐해가 눈에 선하다.

이것은 엽관제(spoils system)로서 1800년대 미국에서 존재했던 행정학의 고전적 사례이다. 그 유령이 5년마다 21세기 여기, 대한민국에서 출몰한다. 엽관제의 유령을 물리치는 퇴마사가 올 날을 기대해 본다.
2011-07-05 30면
많이 본 뉴스
핵무장 논쟁,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에서 ‘독자 핵무장’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평화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대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독자 핵무장 찬성
독자 핵무장 반대
사회적 논의 필요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