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거짓 ‘평화 메시지’ 담은 CD를 미끼로 사용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 대한 암살에 거짓 ‘평화 메시지’를 담은 CD가 미끼로 이용되는 등 치밀한 계략이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다.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던 라바니 전 대통령을 공격한 암살범이 탈레반 지도부의 육성으로 추정되는 ‘평화 메시지’를 담은 CD를 들고 왔다고 말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자신이 CD의 녹음 내용을 먼저 듣고 아프간 고위평화위원회(HPC) 의장을 맡고 있던 라바니 전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으며 이후 자폭 테러범에 의한 암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아프간 관리들은 암살범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라바니 전 대통령을 만나려고 최장 나흘 동안이나 기다렸다고 말했다.
암살범은 또 자신이 라바니 전 대통령에게 전달할 제2의 ‘특별’ 메시지를 담은 녹음물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암살 소식에 미국 방문 일정을 축소하고 급거 귀국한 카르자이 대통령은 비통한 어조로 “(CD에 담긴 내용이) 평화의 메시지라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속임수였다. 평화 사절이 사실은 자객이었다”고 덧붙였다.
아프간 정보부 대변인인 샤피쿨라 타히리는 라바니 전 대통령 암살이 수개월 전에 계획됐으며, ‘퀘타 슈라’로 알려진 아프간 탈레반 최고 지도위원회가 암살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프간 탈레반은 정작 암살 사건 후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통상 탈레반은 대변인 2명을 통해 테러 사건 발생 후 자신들의 소행임을 신속히 시인하거나 희생자 수를 과장해 왔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암살범이 라바니 전 대통령에게 탈레반 지도부의 특별 메시지를 갖고 왔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암살에 관해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물라 오마르의 승인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아프간 전문가 네트워크’의 케이트 클라크는 “(탈레반 측의 침묵은) 지도부 내에 암살을 둘러싸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의견 대립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무드 사이칼 전 아프간 외교차관은 라바니 전 대통령이 과거 아프간을 침공한 구 소련군에 저항한 군벌출신이자 두루 존경받는 이슬람 학자였기 때문에 탈레반이 여론의 역풍을 두려워해 암살 시인을 주저한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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