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프는 ‘브라질의 대처’ 호세프, 시우바는 ‘아마존 여전사’로 불려
올해 브라질 대선의 유력 후보는 노동자당(PT)의 지우마 호세프(66·여) 대통령과 브라질사회당(PSB)의 마리나 시우바(56·여), 브라질사회민주당(PSDB) 아에시우 네비스(54) 등 3명이다.세 사람은 생김새만큼이나 성장 과정이나 정치 경력이 다르다. 호세프 대통령과 시우바 후보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정부(2003∼2010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정계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 호세프 = 브라질의 제40대 대통령인 호세프는 흔히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견줘 ‘브라질의 대처’로 불렸다.
호세프는 1947년 12월14일 남동부 미나스제라이스 주 벨루오리존치 시에서 불가리아계 이민자 후손 가정의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군사독재정권 시절(1964∼1985년) 시절 반정부 무장투쟁 조직에서 활동했고, 1970년에 체포돼 3년간 수감돼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0년 남부 포르투 알레그리 시에서 민주노동당(PDT) 창당에 참여하며 정치에 입문했고, 1986년부터 2002년까지 지방정부의 재무국장과 에너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2001년 노동자당(PT)에 입당해 룰라와 인연을 맺은 호세프는 2003년 1월 룰라 대통령 정부 출범과 함께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됐다. 2005년 6월에는 수석장관인 정무장관에 기용돼 5년 가까이 재직했다.
호세프는 2010년 대선 이전까지 선거 출마는 물론 노동자당에서 당직을 맡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룰라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브라질 사상 첫 여성대통령에 선출되며 브라질 정치사에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호세프는 올해 대선에서 승리하면 브라질 사상 세 번째로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
브라질에서는 군사정권이 끝나고 모두 6명의 대통령이 직선제로 선출됐다. 이 중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전 대통령(1995∼2002년 집권)과 룰라 전 대통령(2003~2010년 집권)이 재선에 성공해 8년씩 정부를 이끌었다.
◇ 시우바 = 1958년 2월8일 브라질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북서부 아크리 주의 히우브랑쿠 시에서 태어났다. 포르투갈계와 아프리카계 이민자의 후손인 시우바는 자신을 흑인으로 규정한다.
시우바는 1984년 대학 졸업 후 현재 브라질 최대 노동단체로 꼽히는 중앙노동자연맹(CUT) 아크리 지부에서 활동했다. 1985년 노동자당에 입당해 룰라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시우바는 시의원과 주의원을 거쳐 1994년 선거에서 최연소(36세)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다. 2002년 선거에서 연방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했다.
2003년 정권을 출범시킨 룰라 전 대통령은 시우바를 환경장관에 기용했다. 시우바는 룰라 정부에서 개발 논리를 앞세우는 각료들과 수시로 충돌했고, ‘아마존 여전사’라는 별명은 이때 얻었다.
시우바는 아마존 지역에 대규모 댐을 건설하려는 정부 계획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고, 2008년 환경장관직을 사임하고 녹색당(PV)으로 옮겼다.
시우바는 ‘환경보호와 개발의 조화’를 모토로 내걸고 2010년 대선에 출마했다. 1차 투표에서 19.33%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시우바는 비록 3위에 그치며 결선투표에 오르지 못했지만, 2천만 표 가까운 득표력을 보이며 전국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이후 시우바는 환경보호를 앞세우는 정치·사회단체 연합체 ‘지속가능 네트워크’를 결성해 올해 대선을 준비했다. 그러나 ‘지속가능 네트워크’가 정당 설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연방선거법원의 해석 때문에 독자적인 대선 출마가 어려워지자 브라질사회당과 손을 잡고 부통령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브라질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에두아르두 캄푸스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면서 대선 후보로 추대됐다.
◇ 네비스 = 1960년 3월10일 미나스제라이스 주 벨루오리존치 시에서 태어났다. 네비스는 브라질의 유명 정치인인 탄크레두 네비스의 외손자다. 탄크레두 네비스는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를 지냈고 주앙 고울라르 대통령 정부(1961∼1964년)에서는 총리를 역임했다. 네비스의 조부 트리스탕 페헤이라 다 쿵야와 부친 아에시우 쿵야는 연방하원의원을 지냈다.
정치가문에서 자란 네비스는 20대에 일찌감치 정계에 입문했다. 1983년 당시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였던 외조부 탄크레두 네비스의 개인 비서로 일했고, 1986년에는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후보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네비스는 1990년대 들어 브라질사회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네비스는 2001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연방하원의장으로 선출됐으며 2002년에는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에 당선됐다. 2006년 주지사 재선에 성공했고, 2010년에는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네비스는 2013년 브라질사회민주당 대표를 맡은 데 이어 올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네비스는 연방하원의장이던 2001년 당시 대통령과 부통령이 함께 외국 순방에 나서면서 3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브라질의 유명 시사주간지 에포카(Epoca)는 2007년부터 해마다 네비스를 ‘브라질을 움직이는 100인’의 한 명으로 선정했다. 이 때문에 브라질 정치권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 네비스는 가장 주목받는 차기 지도자의 한 명으로 꼽힐 것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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