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용의자 외조부 이어 전후체제 탈피 추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일 통산 재임 1천242일을 기록해 전후 일본 총리 가운데 6위로 올라섰다.아베 총리는 제1차 집권기(2006년 9월∼2007년 9월) 때 366일간 재임했고 2012년 12월 26일 다시 총리가 됐다.
그는 2014년 12월 총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해 20일까지 876일째 2차 집권기를 보내고 있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는 그가 정치적 지표로 삼는 것으로 알려진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 전 총리의 재임일수(1천241일)를 뛰어넘었다.
아베 총리는 그가 정치적 스승이라고 평가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1천980일에 비해 아직 재임 기간이 2년 정도 부족하지만 근래 일본에서는 드물게 장수 총리 대열에 들어섰다.
아베 총리가 기시 전 총리의 재임 기록을 돌파함에 따라 전후 체제 탈피라는 목표에서도 외조부가 이루지 못한 꿈을 달성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기시 전 총리는 1941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에서 상공 대신을 맡았으며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과 더불어 A급 전범 용의자로 구금됐으나 기소되지는 않았고 1948년 석방됐다.
그는 미국이 반공 전선을 중시하는 가운데 1957년 총리가 됐으며 1960년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개정했다.
아베 총리는 안보 정책에 관한 주요 기자회견이나 지난달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기시 전 총리의 공을 거론했으며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정부 견해를 각의 결정하고 18년 만에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 등 외조부의 뒤를 이어 전후 체제 탈피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집단자위권 관련 법률의 제·개정과 아베 총리가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는 헌법 개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역사 인식에서도 외조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사히(朝日)신문은 기시 전 총리가 전범 용의자로 갇혀 있는 동안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을 일본의 침략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고 20일 전했다.
’대동아전쟁’은 태평양전쟁을 당시 일본이 지칭하던 용어로 한반도 등 일본이 식민 지배한 아시아 권역 등을 하나로 묶은 이른바 ‘대일본제국’이 미국 등 서구 열강에 맞서 싸웠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고 비판받는 표현이다.
2차 대전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군총사령부(GHQ)는 공문서 등에서 ‘대동아전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금지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침략의 정의가 정해진 것이 아니다’고 언급하거나 무라야마(村山)담화를 계승한다면서도 ‘식민지배와 침략’이라는 핵심 표현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한사코 피하는 등 외조부와 비슷한 인식을 지닌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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