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당국자들 사이에선 진전 전망에 ‘회의론’ 우세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 문제 돌파 기회로 삼는 ‘역발상’ 가능성도
11월 1일 한일 정상회담(서울) 성사가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한일간 핵심 현안인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선택이 주목된다.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 문제 앞에 아베 총리가 이제까지의 기조대로 ‘회피’와 ‘부정(否定)’을 택할지, 나름대로 과감한 해결책을 냄으로써 돌파하려 할지가 관심을 모으는 양상이다.
진보 성향인 아사히 신문과 우익매체인 산케이 신문은 17일자에 나란히 한일 정상회담 관련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소개했다. 두 신문을 포함한 여러 일본 언론은 ‘한중일 3국 정상회담 계기에 한일정상회담을 할 수 있으며, 군위안부 문제에 진전이 있다면 의미있는 회담이 될 것’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15일 발언을 전했다.
이처럼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일본 내부의 분위기이지만 회담이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사이의 첫 회담이라는 상징성만으로 끝날 것인지, 한일관계 개선의 중대 전기가 될지는 상당 부분 군위안부 문제의 진전에 달렸다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일본 언론에 보도된 일본 정부 내부의 분위기는 ‘양보 불가’ 쪽에 가까워 보인다.
17일 보도에 의하면, NHK의 취재에 응한 일본 외무성 간부는 “일본 측이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양보하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라고 말했고, 마이니치 신문이 접촉한 외무성 간부는 “회담(한일정상회담)을 의미있게 만들려면 일체 (군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가 2012년 12월 총리 자리로 복귀한 이후 ‘군위안부 강제연행은 없다’, ‘군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는 등의 주장을 국내외에 전파하는데 힘을 써 왔다는 점이 ‘해결 난망론’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군위안부 문제에서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은 채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을 ‘외교적 승리’로 치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견해가 있다. 피한다고 사라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문제 해결에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날리면 한국과 중국의 군위안부 관련 대일 요구는 앞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올해 중국의 시도가 불발로 끝난 군위안부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한·중이 공조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 한·중의 행보가 계속되는 동안 아베 총리는 해결을 요구하는 국제 여론과 계속 맞서야 한다.
이미 올들어 일본과 세계 각국의 학자들이 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단 성명을 발표한 상황에서 아베 총리 본인도 지난 8월에 낸 전후 70년 담화에서 여성들의 존엄 훼손을 누차 언급했다. 결국 아베 총리 입장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자신에게 씌워진 ‘군위안부 부정론자’의 멍에를 벗고, 담화에서 피력한 인식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로 볼 여지도 있는 것이다.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후 기자회견에서 한일간 ‘역사 문제’의 해결 필요성을 강조한데서 보듯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공조를 복원하려는 미국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미 측은 박 대통령이 군위안부 문제를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는 유연성을 보인 만큼 아베 총리가 화답해야 한다는 쪽으로 일본 측을 설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 대변인이자 아베의 ‘복심’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16일 기자회견에서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치·외교문제화 해서는 안 된다”는 오랜 ‘레퍼토리’를 뺀 채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레벨(급)에서 협의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심상치 않게 들렸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참의원 선거(2016년 7월)를 치르는 내년에는 군위안부 문제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에 아베 총리로서도 이번 정상회담을 군위안부 문제를 일단락지을 마지막 기회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한일 정부 사이에 신뢰가 희박한 상황에서 정상회담까지 남은 2주 사이에 군위안부 문제의 최대 쟁점인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아 피해자들도 받아들이는 최종 해결안을 도출하기는 물리적으로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만만치 않다.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아 문제 해결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천명하는 선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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