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커우 하원의장 ‘인권’ 지적에 어색한 분위기로 시작英언론 “단조로울 정도로 간결” “상투적” 평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영국 국빈 방문은 ‘황금마차’를 동원한 극진한 환대로 시작됐지만, 이후 의회 연설에서의 분위기는 바깥에서 느껴진 ‘열렬함’과는 사뭇 달랐다.20일(현지시간) 영국에 도착한 시 주석은 이날 오후 영국 국회의사당 웨스트민스터의 로열 갤러리에서 중국어로 11분간 연설을 진행했다.
중국 국가주석 중에서는 처음인 ‘역사적’ 의회 연설은 시작부터 어색했다.
존 버커우 하원의장이 연설에 앞서 시 주석을 소개하면서 이곳이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가 연설한 곳이라며, 수치 여사를 가리켜 ‘노벨평화상 수상자’ ‘민주주의의 대변인’ ‘인권의 상징’ 등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중국의 경제적·정치적 행동은 중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십억 명이 지켜보고 있다”며 “우리는 단순히 세계에서 강한 국가만이 아니라 세계적 도덕적 영감을 주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야 한다”고 말했다.
버커우 의장은 이에 앞서서도 곧 영국을 방문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언급하며 “물론 그는 위대한 민주주의의 대리인”이라고 덧붙이는 등 중국의 인권탄압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버커우 의장의 예상치 못한 ‘인권 강의’를 시 주석은 아무 반응도 드러내지 않은 채 공손하게 들었으며, 이후 버커우 의장이 청한 악수에도 응했다.
이후 진행된 시 주석의 연설은 버커우 의장의 인사말보다도 오히려 ‘심심’했다.
시 주석이 역사적 사례 등을 거론하며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자고 강조했지만 연설 도중 한 차례도 박수 갈채가 터지지 않았고, 연설 후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하는 장면도 연출되지 않았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박수와 함께 연설이 끝이 났다”며 “연설은 대부분 ‘우호적인 유대관계’ ‘이해관계 공유’ ‘상호 영향’ 등 외교적이고 상투적인 내용”이었다고 평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시 주석의 연설은 단조로울 정도로 간결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고 평가했고, 영국의 한 외교 관계자는 FT에 “(시 주석의 연설은) 완벽했다. 의미있는 내용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비꼬기도 했다.
시 주석은 연설 도중 청중을 고려해 “과거는 서막에 불과하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 속 대사와 “현명한 자는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를 만든다”는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텔레그래프는 그러나 ‘템페스트’ 속 대사가 등장인물 안토니오가 세바스티안에게 살인을 부추기는 과정에서 한 말임을 지적하며 “살짝 이상한” 인용이라고 지적했다.
시 주석의 중국어 연설 도중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동시통역기를 착용하지 않은 채 앉아있던 것도 구설에 올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총리가 벼락치기로 중국어를 공부했나”라고 의문을 제기했고, 일간 미러의 기자는 트위터에 “총리가 중국어를 할 수 있거나 시 주석 연설에 눈곱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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