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4명 등 6명 부상…피츠버그 ‘공포의 20분’ 후 40대 남성 체포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州) 피츠버그의 유대교 회당(시너고그)에서 27일(현지시간) 40대 백인남성에 의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11명이 숨지고 경찰 4명을 포함해 6명이 부상했다.미국 역사상 최악의 반(反)유대인 범죄로 기록될 전망인 가운데, 열흘도 채 남지 않은 미국 중간선거 표심에 영향을 미칠 지도 주목된다.
총격은 이날 오전 10시께 피츠버그 앨러게이니 카운티의 ‘트리 오브 라이프’(Tree of Life) 시너고그에서 일어났다. 이 지역은 피츠버그 도심에서 10여 분 떨어진 곳으로,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유대교 안식일인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5분께 시작되는 예배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피츠버그 당국자는 “사건 당시 시너고그에서는 아이 이름 명명식이 진행 중이었다”고 전했다.
총격이 벌어질 무렵, 내부에는 수십 명이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총격범이 건물로 걸어 들어가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 한다’고 외쳤다”고 지역 매체 ‘KDKA’에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총격범은 최소 권총 3정과 자동 소총 한 자루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목격자들은 “총격범이 유대인을 비난하는 말을 계속 떠들면서 총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총격범은 또 시너고그 입구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도 유대인을 증오하는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총격 당시 ‘아이 이름 명명식’이 진행 중이기는 했지만, 희생자는 모두 성인이라고 피츠버그 당국은 밝혔다. 부상자 6명 중에서 현장에 출동한 경찰도 4명 포함됐으며, 일반인 부상자 중에는 중상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츠버그시의 웬델 히스리치 공공안전국장은 기자들에게 “사건 현장은 매우 끔찍하다”면서 “지금까지 내가 봤던 최악의 광경”이라고 말했다.
총격범은 피츠버그 주민인 백인 남성 로버트 바우어스(46)로 확인됐다.
그는 시너고그 밖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총상을 입고 체포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언론에 따르면 바우어스가 회당 내에서 총기를 처음 발포한 뒤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약 20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연방수사국(FBI)은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보고 수사에 들어갔다.
FBI 피츠버그지국의 밥 존스 특별수사관은 “총격범은 시너고그로 들어가 예배를 보는 교인들을 살해했고, 경찰이 출동하자 도주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는 단독 범행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범행 동기는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바우어스는 온라인에서 반(反)유대주의 내용을 수차례 게재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바우어스는 극우 인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소셜미디어 플랫폼 ‘갭닷컴’(Gab.com) 계정의 자기 소개란에 “유대인은 사탄의 자식들”(Jews are the children of Satan)이라고 적었다.
바우어스는 또 범행 수 시간 전에는 갭닷컴에 유대인 난민의 미국 정착을 돕는 비영리단체인 ‘히브리 이민자 지원협회(HIAS) 웹사이트를 게시하면서 “HIAS는 우리 국민을 죽이는 침략자들을 들여오길 좋아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내 국민이 살육당하는 걸 지켜볼 수 없다. 나는 들어간다(I’m going in)”라고 적었다.
갭닷컴 측은 ‘로버트 바우어스’ 명의의 계정이 확인되자 곧바로 사용중지 조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건과 관련, 트위터에 “이 사악한(evil) 반(反) 유대주의 공격은 인류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하고, “우리는 증오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1일까지 조기 게양도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인디애나폴리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회당 안에 보호 방안이 있었다면 아주 다른 상황이 됐을 것”이라며 학교 등에서 발생하는 총기 사건 예방을 위해 더 많은 무장 경비원의 배치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피츠버그를 방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다음 달 6일 예정된 중간선거를 앞에 두고 ‘총기규제’ 이슈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을 전망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반유대주의 범죄로 인해 미국의 다른 유대인 사회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시카고, 워싱턴 등 주요 도시의 시너고그 등에는 경찰력이 배치됐다.
미국의 최대 유대인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에 따르면 미국 내 반유대주의 범죄는 2016년 1천267건에서 지난해 1천986건으로 57% 급증했다.
국제사회도 이번 사건을 놓고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트위터에 게시한 성명을 통해 “우리는 어디에서건 반유대주의에 저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위터에서 “피츠버그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적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을 통해 “계속되는 반유대주의 (행위)를 상기시키는 고통스러운 사건”이라면서 “전 세계 유대인은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계속 공격받고 있다. 반유대주의는 민주적 가치와 평화에 대한 위협이며 21세기에는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