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과도 총리로 21일 선출된 프라윳 찬-오차(60) 육군 참모총장은 지난 5월22일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반년 이상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자 폭력 사태 방지와 질서 유지, 평화 회복을 위한 것이라며, 이 나라에서 19번째로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키기 이틀 전에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쿠데타 후에 집회와 시위를 전면 금지하고 언론에 치안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정보 유통과 발언을 금지했다.
프라윳 총장은 이 쿠데타를 통해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이끌던 정부를 무너뜨리고, 의회를 해산해 행정 및 입법 권력을 장악했다.
프라윳 총장은 왕비 근위 부대 출신으로 대표적인 왕당파 인사로 분류된다.
그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0년 4∼5월 친(親) 탁신 진영의 대규모 시위 때이다. 당시 육군 참모차장이었던 그는 시위를 강경진압하는 데 참여했다. 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90여명이 숨지고 1천700명이 다쳤다.
같은 해 10월 그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으로부터 이 공로를 인정받아 육군 참모총장직에 임명됐다. 그가 ‘왕당파’, ‘반(反)탁신’로 일컬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참모총장에 오른 이후 그는 친탁신계에 대해 한동안 중립적 태도를 취했다.
특히 2011년 잉락 전 총리가 집권한 뒤에는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잉락 전 총리 역시 막대한 예산을 군에 지원하며 군부와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지난해 11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세간의 이목은 프라윳 총장에게 쏠렸다.
태국 군부는 1932년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후 정국이 혼란할 때마다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는 군이 중립을 지키고, 자신은 권력에 관심이 없다고 누누이 말했으나, 쿠데타를 감행하고 과도총리까지 맡았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부터 반년 이상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자 폭력 사태 방지와 질서 유지, 평화 회복을 위한 것이라며, 이 나라에서 19번째로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키기 이틀 전에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쿠데타 후에 집회와 시위를 전면 금지하고 언론에 치안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정보 유통과 발언을 금지했다.
프라윳 총장은 이 쿠데타를 통해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이끌던 정부를 무너뜨리고, 의회를 해산해 행정 및 입법 권력을 장악했다.
프라윳 총장은 왕비 근위 부대 출신으로 대표적인 왕당파 인사로 분류된다.
그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0년 4∼5월 친(親) 탁신 진영의 대규모 시위 때이다. 당시 육군 참모차장이었던 그는 시위를 강경진압하는 데 참여했다. 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90여명이 숨지고 1천700명이 다쳤다.
같은 해 10월 그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으로부터 이 공로를 인정받아 육군 참모총장직에 임명됐다. 그가 ‘왕당파’, ‘반(反)탁신’로 일컬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참모총장에 오른 이후 그는 친탁신계에 대해 한동안 중립적 태도를 취했다.
특히 2011년 잉락 전 총리가 집권한 뒤에는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잉락 전 총리 역시 막대한 예산을 군에 지원하며 군부와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지난해 11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세간의 이목은 프라윳 총장에게 쏠렸다.
태국 군부는 1932년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후 정국이 혼란할 때마다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는 군이 중립을 지키고, 자신은 권력에 관심이 없다고 누누이 말했으나, 쿠데타를 감행하고 과도총리까지 맡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