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피보 응체베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된 ‘HOPE’
그는 테너 가수였다. 하지만 항상 ‘흑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유난히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결코 환영받을 수 없었던, 자신의 담당 교수에게조차 “넌 모차르트를 부를 수 없어. 흑인이 무슨 모차르트야.”라는 타박을 들어야 했던, 그래서 수없이 속울음을 삼켜야 했던 성악가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특별했다. ‘검은 파바로티’라는 수식어가 새로 생겼다. 마침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개막식에 초대받았다. 전 세계 축구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막식 무대를 장식할 가수로 뽑힌 것이다. 이제 더이상 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급성 수막염에 걸리기 전까진.![시피보 응체베](https://img.seoul.co.kr/img/upload/2010/08/04/SSI_20100804024649.jpg)
![시피보 응체베](https://img.seoul.co.kr//img/upload/2010/08/04/SSI_20100804024649.jpg)
시피보 응체베
16살. 응체베는 포트엘리자베스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를 공연할 기회를 얻었고, 이는 케이프타운 대학 입학으로 이어졌다. 장학생이었다.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의 인생에 빛이 보였다. 클래식 전공자들의 꿈인 영국 런던 왕립음악대학 수학 자격도 얻었다. 역시 장학생이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응체베.](https://img.seoul.co.kr/img/upload/2010/08/03/SSI_20100803183028.jpg)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응체베.](https://img.seoul.co.kr//img/upload/2010/08/03/SSI_20100803183028.jpg)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응체베.
![영국 활동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나 아프리카의 희망을 전하고 있는 응체베. 소니뮤직 제공](https://img.seoul.co.kr/img/upload/2010/08/03/SSI_20100803183049.jpg)
소니뮤직 제공
![영국 활동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나 아프리카의 희망을 전하고 있는 응체베. 소니뮤직 제공](https://img.seoul.co.kr//img/upload/2010/08/03/SSI_20100803183049.jpg)
영국 활동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나 아프리카의 희망을 전하고 있는 응체베.
소니뮤직 제공
소니뮤직 제공
이때부터 그는 영국을 중심으로 수많은 무대에서 재능을 펼쳐 나갔다. 흑인이란 ‘유리천장’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남아공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 연락이 왔다. 개막식 무대에 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강력한 천거도 한몫했다.
하지만 기쁨은 여기까지였다. 개막식을 불과 3주 앞둔 5월25일, 그는 급성 수막염으로 서른여섯 짧은 삶을 마감해야 했다. 자신이 수없이 노래 불렀던 오페라 주인공의 비극적 삶처럼.
만델라는 “시피보의 목소리와 그가 부른 노랫말은 이 세상의 영원한 빛으로 남을 것”이라는 헌사를 그의 죽음 앞에 바쳤다. 하지만 애석한 죽음은 월드컵 열기에 이내 묻혔다.
그렇게 잊혀져 가는 듯했던 응체베가 다시 사람들 기억 속으로 돌아왔다. 최근 나온 기념음반 덕분이다. 그는 살아 생전 솔로 음반 한 장 녹음하지 못했다. 20대 때는 유명하지 않아서였고, 유명해지고 나서는 너무 급작스럽게 삶을 마감해서였다. 음반 제목은 ‘희망’(Hope). 데뷔 음반인 동시에 유작이 돼버렸다.
수록곡은 모두 12곡.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유명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비롯해 벨리니 오페라 ‘청교도’의 ‘그대, 오 사랑하는 이여’ 등이 이어진다. 클래식하게 바꿔 부른 남아공 국가(國歌)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도 담겼다.
타이틀 곡의 중간, 만델라가 육성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응체베의 삶과 음반 성격을 응축한다. 흑진주처럼 빛나는 음성으로 ‘희망’을 선사하고 떠난 응체베.
“내게 희망이란 삶의 긍정적인 주춧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믿고 있든지 희망과 연대의식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병실에 누워 있던 응체베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08-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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