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투영된 파란만장한 인간의 삶

침대에 투영된 파란만장한 인간의 삶

입력 2011-06-16 00:00
수정 2011-06-1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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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철 장편 ‘침대’ 출간

“나는 침대였고, 나무였으며, 인간이었다. 침대로서 인간들의 몸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나무로서 인간들의 영혼 속으로 뿌리를 내렸으며, 인간들의 꿈으로 꽃을 피웠다.”(579쪽)

소설가 최수철(53) 씨가 장편 ‘침대’(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장편으로는 2005년 펴낸 ‘페스트’ 이후 6년 만의 신작이다.

”나는 침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제목처럼 침대 이야기다. 그러나 침대를 소재로 한 소품 같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침대에 대해 연상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방대하게 펼쳐진다.

소설은 시베리아의 한 자작나무가 침대가 돼 러시아 리에파야 항구에 도착하고, 발틱 함대와 희망봉을 돌아 싱가포르를 거쳐 대한해협까지 이르는 100여년 간의 세월을 배경으로 침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기야 침대가 되는 것 이외에, 세상의 만사에 대해 가장 잘 이야기할 방법이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침대는 그저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당신들 악마성의 근원이자 모든 희망과 가능성이 공존하는 신비한 장소인 것이다.”(11-12쪽)

침대의 기나긴 여정을 그리면서 소설은 침대를 거쳐 간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동북아의 역사를 담아낸다.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과 숭고한 사랑과 희생 등 인간의 삶을 온몸으로 겪은 침대를 통해 세상을 이야기한다.

침대가 되기 전 ‘나’는 서시베리아 침엽수 지대에서 자란 활엽수 자작나무였다. 이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란 소년 미누는 자신과 연인 우그리아를 해치려는 칼리우(악령)와 대결하다 우그리아를 잃는다. 미누는 자작나무를 베어 우그리아의 관이자 자신의 안식처를 만든다.

이후 나무는 벌목꾼에게 발견돼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려 대륙을 가로지르고, 침대로 만들어져 의사 안드레이의 침대로 전쟁터에 나간다. 침대가 실린 병원선이 일본 함대에 나포되면서 침대는 무라사키라는 일본 군인의 손에 들어가고, 기생 후쿠쓰케와 만난다.

후쿠쓰케는 조선의 풍류객 장선우의 아이를 낳다가 침대에서 세상을 떠나고, 이후 침대는 조선의 세도가 송병수의 저택으로 옮겨진다. 조선으로 건너오고 나서도 침대는 유랑 서커스단장, 거지 왕초를 만나고 전쟁을 겪는 등 많은 일화가 서로 엮이면서 꿈과 현실을 오가듯 무궁무진하게 이어진다.

작가 최씨는 “침대는 인간의 영혼과 정신, 육체와 가장 밀착한 소재이면서 신화와 역사적인 면도 가진 소재”라며 “인간의 면모가 가장 잘 복합돼 드러나고 삶의 단면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주는 소재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침대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동북아 역사의 흐름 속에 접목시켜 하나씩 끌어냈다”며 “예전에는 현대인의 의식을 중심으로 실존적인 삶의 가치를 분석하는 소설을 주로 썼는데 이번에는 글쓰기의 모든 형식을 동원해 소설의 본령인 이야기를 꽃피워보자는 방향으로 변화를 꾀했다”고 덧붙였다.

582쪽. 1만4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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