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네들 손에 피어난 유럽명화 속 집 이야기

아낙네들 손에 피어난 유럽명화 속 집 이야기

입력 2012-10-13 00:00
수정 2012-10-1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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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타넬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1876년 작 ‘점심식사’(큰사진). 점심 때인데 어둡다. 창에 어리는 빛으로 봐서는 날이 흐리거나 방이 구석진 곳에 있어서가 아니다. 두꺼운 커튼에다 어두운 가구들 때문이다. 방을 더 어둡게 하는 것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식사에만 몰두하는 풍경이다. 카유보트의 이 그림을 두고 흔히 과감한 원근법 얘기를 한다. 관람객이 식탁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 맨 아래의 접시가 아예 평면으로 보일 지경으로 원근법을 강하게 적용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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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치적 해석도 있다. 1871년 파리코뮌이다. 코뮌 세력의 바리케이드 저항을 막기 위해 파리는 아예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확 밀어버리고 대로를 냈다. 그걸 주도한 이가 오스망 남작이고, 오늘날 볼 수 있는 파리 시가지의 원형은 이때 형성됐다. 저자가 이 그림을 두고 “오스망 시절 파리의 호화로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숨막히는 권태와 고독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카유보트의 독창성”이라고 해둔 이유다. 파리코뮌의 상처가 그림에 깊게 배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심영아 옮김, 이봄 펴냄)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서구의 명화들을 ‘예술혼’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적 풍속화’로 조명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여자고, 제목에 ‘살림’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간단히 볼 책이 아니다. 1차적으로는 에밀 살로메, 요하네스 베르메르, 빌헬름 함메르쇼이, 에드가 드가 등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중세에서 20세기까지 유럽의 인테리어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지만, 저자는 여기서 유럽 모더니티의 흐름도 정확히 짚어 나간다.

가령 근대 초기 한때 “잘 때는 18세기로 가고, 저녁은 15세기에서 먹으며, 시가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때는 동방으로 가고, 몸단장을 하려면 폼페이나 고대 그리스로 가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한 인테리어가 있었고, 이는 고스란히 그림에 드러난다. 이게 가능했던 건 집을 관리할 수 있는 거대한 하녀군단 덕분이다. 그런데 하녀군단이 사라지면서 이런 치장은 사라져 갔다. 대신 등장하는 것은 단순하고 간결한 스타일이다. 그림을 통해 읽는 시대상의 변화, 꽤 매력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10-1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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