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한국과 일본… 열린 마당에서 경계 허물다

어제와 오늘, 한국과 일본… 열린 마당에서 경계 허물다

입력 2013-05-13 00:00
업데이트 2013-05-13 00:18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합작 연극 ‘아시아온천’ 일본 초연

이미지 확대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연극 ‘아시아 온천’의 한 장면. 예술의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이 공동제작한 작품으로 언어와 나라, 전통의 벽을 넘어 위로와 화합을 이야기한다. 일본 신국립극장 제공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연극 ‘아시아 온천’의 한 장면. 예술의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이 공동제작한 작품으로 언어와 나라, 전통의 벽을 넘어 위로와 화합을 이야기한다.
일본 신국립극장 제공
지난 10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중극장.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건 한국의 것인가, 일본의 것인가, 자꾸 정체성의 잣대를 들이대려 했다. 하지만 극이 흐를수록 그런 재단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배우의 입에서 어떤 언어가 튀어나오든, 어떤 유형의 몸짓을 보여주든, 결국 모든 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예술의전당과 신국립극장이 함께 제작한 연극 ‘아시아 온천’은 큰 틀에서 보면 마당놀이에 가깝다. 무대는 열려 있다. 무대 안쪽에 사탕수수 몇 그루가 서있고, 그 뒤에 조명탑이 놓였다. 안쪽 벽에는 바다와 맞닿은 하늘이 있다. 무대 좌우에는 배우들이 대기하는 의자, 의상이 빼곡히 걸린 옷걸이, 연주 공간이 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도 없다. 배우들은 극중 이야기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관객에게 눈을 맞추며 농담을 던지고 바나나와 견과류 등 음식물을 나누어 준다.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의 희곡에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출의 묘를 넣은 ‘아시아 온천’에는 이 외에도 여러가지 시도가 녹아 있다.

일단 시대적 배경과 국가가 명확하지 않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어제도’라는 섬이 상징이다. ‘어제’라면 과거의 얘기인가 싶은데, 인물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지금부터 얘기하는 것은/ 호랑이가 담배통으로 담배를 핀 어제의 얘기냐/ 호랑이가 전철로 회사로 간 내일의 얘기냐/ 에누에누야 에야누야누 오교차/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아시아 어딘가에 놓인 이 섬에서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올리면서 극이 시작된다. 높은 천장에서부터 드리워 놓은 하얀 천 줄기들을 중심으로 음식을 차리고 절을 올리고 있다. “조상께 올리는 음식이 이렇게 초라하냐”면서 역정을 내는 ‘대지’에게 노년의 여인 ‘후유’, 섬에 온천을 개발하고 리조트를 지으려는 형제 ‘가케루’와 ‘아유무’가 찾아온다. 가문 대대로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키면서 “내 조상의 피와 땀과 영혼이 가득한 이 땅”에 살아온 대지에게 이들의 존재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대지와 가케루가 대립하는 가운데 대지의 딸 ‘종달이’와 아유무가 사랑에 빠졌다. 로미오와 줄리엣인 셈이다. 아유무를 협박하려고 부른 자리에서 실수로 아유무가 죽고, 종달이도 자결한다. 대지는 종달이를 먼저 보낸 죄책감에, 가케루는 동생을 잃은 분노에, 마을을 지키려는 책임감과 이 와중에도 한몫 잡으려는 욕심에, 사람들은 싸우고 상처받는다. 그러나 어떤 갈등이라도 해소의 방법은 있다.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는 거다.

정의신 작가가 ‘야끼니꾸 드래곤’, ‘나에게 불의 전차를’ 등 전작에서 한국과 일본의 아픈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냈던 터라 이 역시 양국의 이야기인가 하며 빗대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연극을 깊이 들여다보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 연극은 사이사이에 동물 가면을 쓴 무도회가 열리기도 하고, 일본의 만담이 불쑥 튀어나오는가 하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천도재를 올리기도 한다. 대사도 한국말과 일본말이 뒤섞인다. “열린 연극”을 강조한 손 감독은 이 부분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관객의 국적, 개인적 경험 등에 따라 자유롭게 읽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국립극장의 미야타 게이코 연극 부문 예술감독은 이번 작업에 대해 “다름을 발견하고, 차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다소 무리하게 양국의 색을 입힌 듯한 모습도 있다. 온천을 발견해 돈을 벌려는 꿈에 부풀어 삽질을 해대는 ‘우시조’, ‘우마조’, ‘도조’의 만담이나 리어카를 끌고 이야기를 관망하는 ‘병아리’와 ‘원숭이’의 대화가 그렇다. 비장미가 흐르는 이야기에 웃음을 이끌어내는 장면이지만 완전히 녹아들지 못해 흐름을 뚝뚝 끊는다.

800여석을 메운 관객들 반응은 흥미로웠다.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배우들을 따라 박수를 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사실주의 연극에 익숙한 일본 관객들에게 파격적인 ‘열린 연극’ 무대는 낯설어 보였다.

‘아시아 온천’은 26일까지 신국립극장 중극장에서 개관 15주년 기념 ‘위드’(WITH) 시리즈로 공연한 뒤 새달 10~1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관객을 만난다. 김진태, 서상원, 정태화, 가쓰무라 마사노부, 성하, 우메자와 마사요 등 한·일 배우들이 양국에서 모두 출연한다.

도쿄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2013-05-13 21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