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네번째 시집 ‘베를린, 달렘의 노래’
‘이 동네 민들레꽃은 너무 크고 징그러워/언제든 비교하는 내 안의 이방인, 너를 데리고 다니기가 버겁다’(이방인)
김이듬 시인
이렇게 낯선 자아와 인연, 풍경, 사건들과 조우했던 5개월여의 시간이 67편의 시로 쓰여졌다. 그의 네번째 시집 ‘베를린, 달렘의 노래’(서정시학)다.
시편들은 전작에서 보여줬던 팽팽한 긴장과 불안, 격렬한 사유를 한 움큼 덜어냈다. 대신 “자유의지로 선택한 유배지에서 겪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지상중계로 전한다”는 허수경 시인의 발문처럼 자유롭게 부유하며 때로는 감성 어린 기행에세이로, 때로는 상냥한 편지로 날아든다.
‘저는 환희 속에 시를 써 본 적이 없어서/당신을 만난 기쁨 때문에 시를 쓸 수 없어서/편지를 씁니다’(손수건 나무) 시의 고백대로 시인은 그간 괴로움과 슬픔 속에서 시를 잉태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방의 땅에서 그는 변화를 겪었다.
“그간 투덜거리는 시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파독 광부·간호사 등 이민자, 유학생 등 추운 땅에서 고생해온 분들을 만나니 내가 생각했던 잔혹함이 더 큰 잔혹함을 겪었던 사람들 속에선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더군요. ”
베를린에서 맺은 인연들은 “네가 해를 가져왔다”고 시인을 담뿍 반겼다. 이제 남겨두고 온 사람들에게 떠나온 시인은 시로 태양을, 온기를 건넨다. ‘나보다 훨씬 가난한 여자들이 나를 위해 곰 인형을 샀다 아마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싱거운 소리를 하다가 가을이 오면 같은 유행가를 큰소리로 부르는 거 그들이 읽어주는 시를 듣고 인상 쓰는 거 울지 않고 포옹하는 거 먼저 뒷모습을 보여주는 거 돌아와서 불을 켜고 더 깊이 외로울 거’(태양이 머무는 곳)
급할 때면 터지던 모국어가 태아를 길러낸 자궁 속 양수처럼 자신이 발현한 물과 같다는 깨달음도 찾아왔다. ‘목 근처에 오크목보다 좋은 향기가 나는 이온수로 가득 찬 이동식 욕조가 있습니다 이 안에 태아가 있다면 푸르스름하고 미성숙한 뼈를 가진 아가가 있다면 그 애는 자궁으로 가게 하세요(…중략) 몸을 씻은 후에 들어오지 말고 눈물과 오물, 고름을 닦아내지 말고 오세요(…중략) 욕을 할 때의 모국어는 나를 지원합니다 슬프게 합니다 당신은 여러 면에서 불결하고 매력적인 모국입니다’(모국어)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3-08-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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