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널사랑해’서 과장 연기 호평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이건 역을 연기한 배우 장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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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선 굵고 남성미 넘치는 인물을 연기했던 배우 장혁(38)이 물결 치는 장발에다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과장된 몸짓으로 화면을 꽉 채웠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는 정박을 가는 캐릭터가 아니라 엇박을 치는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혁은 한 문장으로 변신의 이유를 정리했다.
”널 뛰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감정만 가지고 계속 던지면 되니까요. 그러나 주인공이 계속 널뛰다 보면 돌아올 수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가족드라마에요. 코미디 로맨스도 있지만 휴머니즘을 더 갖고 가야 했어요.”
주인공인 이건으로 분한 장혁은 작품을 시작하기에 앞서 연출자인 이동윤 PD에게 “이번 작품에 다 던지겠다. 내가 널뛰는 대신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장혁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
드라마는 주연인 장혁·장나라(33)가 12년 전 4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한 ‘명랑소녀 성공기’만큼의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애청자들의 단단한 지지를 받았다.
”이번 드라마는 독특하고 설득력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출연작 중 MBC ‘고맙습니다’(2007)와 ‘명량소녀 성공기’(2002)를 합쳐 놓은 느낌이었어요. 둘의 공통점은 착한 드라마라는 점이죠. 그런 전형적이고 당연한 부분을 그대로 갖고 가면서도 새로운 부분을 만들었어요.”
그 새로운 부분이 바로 작정하고 몸을 던진 장혁의 연기였다.
장혁은 이건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50대에도 철없는 아저씨가 주인공인 일본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과 강박증에 까다로운 작가가 등장하는 미국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리고 주성치 작품들에서 풍기는 느낌을 참고했다고 했다.
이건의 중독성 있는 웃음소리는 그럼 어디에서 왔을까.
조만간 개봉할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장혁이 맡은 조선 태종의 왕자 시절 정안군 방원의 웃음소리를 현대극에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다 쓴 것이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 장혁의 설명이다.
장혁은 이건에 몰입해 마음껏 내달리다가도 이동윤 PD와 장나라가 “자기들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기에 돌아올 수 있었다”면서 공을 돌렸다.
그는 “장나라 씨는 센스가 있는 친구라 신뢰가 많이 갔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장나라 씨를 오랜만에 봤는데 그 모습 그대로였어요. 외모도 외모이지만 옛날에 본 수줍은 듯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칭찬하는 걸 못 견뎌 하고 무척 민망해하는 데 공감했어요. 사람도 워낙 착해요.”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돌아온 ‘짱짱커플’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장나라가 분한 김미영의 키다리 아저씨인 다니엘(최진혁 분)과 장혁의 옛 여자친구 강세라(왕지원)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축소됐다는 지적도 받는다.
”사실 주인공 2명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넓게 펼쳐지는 것이 가장 좋죠. 이 드라마에서는 2명이 중심이 아닌 선두에 있어서 주변 인물들이 필요할 때마다 이들에게 와서 사건을 만들고 하는 식이어서 좀 아쉬움은 있어요.”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배꼽 잡게 한 대표적인 장면이 이건과 김미영이 하룻밤을 보내는 부분에 등장한 이른바 ‘떡방아’ 장면이다.
한복 차림의 이건과 김미영이 오묘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떡방아를 찍던 장면을 회고하는 장혁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실제 대만 원작의 해당 부분에는 어마어마한 게 있었어요. 기차가 터널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전투기가 발진하는 식이죠. (웃음) 심의 허용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표현을 찾느라고 제작진이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웃음)”
드라마는 이건과 김미영이 다시 진정한 부부의 인연을 맺는 동화 같은 결말을 보았다. 장혁은 드라마 종영과 동시에 이건이라는 인물을 털어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사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제 30번째 작품이에요. 시청자들이 호응해줘서 기분은 좋지만 항상 작품이 끝나면 배역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 작품에서 묻어 나와요. 어떤 역이 호응이 좋았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또 그렇게 끝나는 것이라 생각해요. 작품이 끝나면 배역을 냉정하게 확 털어내는 것이 습관이 됐네요.”
장혁은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된다. 삼십대 장혁이 쌓아온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사십대의 장혁도 궁금해진다. 그의 목표를 물었다.
”어떤 걸 정한 채 가고 싶지 않아요. 성격만 해도 지금 제 모습은 2014년 9월19일의 성격이고 (웃음) 1년 후에는 또 달라질 거에요. 어릴 때는 어떻게 돼야 한다는 생각에 삶에 각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각이 좀 뭉툭해져서 흘러가는 대로 하게 돼요.”
그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예전에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인다”면서 “신인 때보다 지금 못 하는 일이 많겠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진 건 열정”이라고 강조했다.
장혁은 언제부터 그런 넉넉함과 유연함을 갖게 됐을까.
”군대 있을 때 다 놓았다. 한 번 다 내려놓으니 쉽더라. 사람은 놓으면 된다. 비어 있는 상태에서는 채우면 된다”고 말을 이어가던 장혁은 “아니, 굳이 안 채우려고 하더라도 살다 보면 채워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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