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요 정당, 철학 없고 부족주의에 갇혀”

“한국의 주요 정당, 철학 없고 부족주의에 갇혀”

입력 2015-06-05 08:20
수정 2015-06-0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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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한국정치 비평서 출간

“한국정치? 절망엔 익숙하고, 희망을 품기엔 불편함을 안기는 그 무엇.”

다니엘 튜더(33)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주재 특파원이 한국정치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관한 화두를 던지는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문학동네)을 최근 펴냈다.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물론, 모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 등을 통해 한국정치는 물론 사회전반에 대한 만만치 않은 이해의 내공과 날선 비판의식을 보여온 그다.

책 출간차 방한한 튜더씨를 지난 4일 오후 홍익대 인근 모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2012년 ‘한국 맥주 맛없다’는 기사를 써 국내외에 파문을 일으켰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의 기사를 접한 국내 맥주 회사들은 발칵 뒤집혔고, 일제히 반박 자료를 냈다. 그러나 다수 소비자들은 ‘격하게’ 공감했다. 지나고 나니 천편일률적인 국산맥주 맛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책은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라는 부제를 달았으나 우리가 국내에서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좌파의 범주에 국한하지 않고 기성정당 모두와 현 정치 구조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기성 정치인이라면 심기가 불편해질 대목 투성이다.

일반인에겐? 지지부진한 야권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에겐 특히 한 병의 ‘청량제’로 받아들여질만 하다.

그에게 물었다. “어쩌면 이렇게 한국정치를 잘 아나? 족집게로 환부를 도려내는 듯하다.”

”지난 2012년 대선을 겪으면서 집중적으로 취재했고, 여러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두 정당도 숱하게 방문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정치를 비평하는 부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특파원으로서 적지 않은 특혜를 누린 점과 그간 한국에 살면서 쌓아온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했다.

외부 관찰자의 시선은 때로 내부자가 스스로는 깨닫지 못할 과오들을 일깨운다.

그는 자신의 지인인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사를 방문해 겪은 일화를 예로 든다. 문재인 후보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이 기자는 당시 민주당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인터뷰 내용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은 그가 준비해간 정책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 대신 1980년대 학생운동 당시 자신들의 활약상만을 부각했다. 당연한 귀결로 인터뷰 기사는 실리지 못했다. 튜더씨의 표현대로라면 “미국 유력 일간지에 문 후보에 대한 우호적 기사가 보도될 기회를 허공에 날리고 만 것”이다.

”철학이 있어야 할 자리에 민주화 운동에 뿌리를 둔 저항의 역사가 지배하는 ‘부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튜더씨가 지목하는 민주당을 이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주소다. 부족주의란 곧 계파 갈등 혹은 운동권 정서에 갇힌 구조를 뜻한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20세기 후반의 개발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상 국내총생산(GDP) 성장 외에 아무런 기본철학이 없는 정당이다.”

정당의 능력 면에선 엇갈린 평가를 내린다. 새누리당은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왔지만, 새정치연합은 유권자를 설득하는 일에 늘 ‘젬병’이라는 진단이다.

두 주요 정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 가능성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진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전쟁 세대나 386세대와 달리 이념에 영향을 받지 않는 첫번째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불평등에 민감하지만 대북정책에 있어선 보수적이다. 진짜 문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의제를 제시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베페 그릴로가 주도한 풀뿌리 정치조직화와 그 산물로 등장한 정당인 ‘5성 운동’(Movimento 5 Stelle, M5S)의 성과에 주목한다. “한국에서도 변방에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대안을 기다리고 있다. 풀뿌리 정당으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야권 세력을 흡수한 뒤에는 ‘정상’ 정당의 진용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회원 투표로 주요 결정을 내리고, 인터넷의 파워를 적극 활용해 회원의 목소리를 반영함으로써 일반 회원들이 정당 핵심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도록 하는 본질은 이어가야 한다.”

그는 제분산업이 번창했던 맨체스터 근처 스테일리브리지에서 자랐다. 마거릿 대처 총리 이후 제조업 공동화에 이른 영국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충고는 곱씹어볼 대목이다.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분배가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도 경청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현재 영국에서 활동중인 튜더씨는 몇몇 친구들과 대안 인터넷 언론 ‘바이라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바이라인엔 한국인 사이트 개발자가 참여했다.

그는 “당분간은 영국에서 독립 매체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여전하며, 현재 일이 여의치 않다면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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