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시루 완형품은 처음, 비상시에 함께 묻은듯
울산 율리 영축사지라는 절터에서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청동향로와 청동시루, 청동완(사발)과 같은 유물이 출토됐다.![울산 영축사지 고려 청동 유물](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06/08/SSI_20150608102400_O2.jpg)
울산박물관 제공
![울산 영축사지 고려 청동 유물](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06/08/SSI_20150608102400.jpg)
울산 영축사지 고려 청동 유물
8일 울산 영축사지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청동시루.
울산박물관 제공
울산박물관 제공
거꾸로 엎은 청동시루 아래서 향로가 넘어져 반쯤 걸친 상태로 발견됐다.
나아가 시루 안에 꽉 찬 흙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청동완과 시루의 나머지 손잡이 한쪽도 함께 확인됐다.
조사단은 출토 상태로 보아 지름 50㎝인 구덩이를 파서 청동향로를 놓고 그 위에 뚜껑 용도로 청동완을 덮은 다음에 그 위에 다시 청동시루를 덮어 묻었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높이 25.7㎝, 바닥지름 23.5㎝인 청동향로는 세 개 다리가 달린 원형받침에 몸체를 얹은 형태로 다리와 받침, 몸체를 따로 만들어 각각 3개 못으로 고정해 완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광섭 관장은 “고려시대 청동 향로가 아주 희귀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영축사지 청동향로처럼 출토지가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장식이 화려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 없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제작기법과 형태 등을 볼 때 현재까지 발견된 향로 중 비교적 이른 고려 전기(11~12세기)에 만들었다고 추정했다.
더 관심을 끄는 유물은 청동시루. 높이 24㎝, 입지름 42㎝, 바닥지름 37㎝인 이 시루는 몸체가 원통형이며 중간 지점에 손잡이가 있다.
바닥은 2단으로 나누어 코끼리 눈 모양인 안상문(眼狀文)을 뚫었다. 바닥에 몇 군데 수리 흔적이 있는 점으로 보아 오랜 기간 사용했다고 추정된다.
고려시대 청동시루로는 청주 사뇌사지 출토품이 있기는 하지만 출토 당시 완전히 파손된 상태라, 영축사지 청동시루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는 가장 이른 시기 금속제 시루로 보인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같이 출토된 기와 등의 유물을 감안할 때 청동향로와 같은 시기 유물로 짐작됐다.
청동시루는 불교 의식 때 떡이나 밥 등을 쪄서 불전(佛殿)에 바치는 용도로 사용됐다고 추정된다.
청동완은 고려시대 전형적인 청동제 그릇 형식이다. 지름 15.5㎝, 높이 9.5㎝인 이 청동향로는 발견된 모습으로 볼 때 이곳에 묻을 당시에는 원래 용도가 아닌 청동향로 뚜껑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이들 청동유물 3점은 일괄로 발견됐다는 점에서 청주 사뇌사지, 경주 망덕사지, 서울 도봉서원에서와 같이 소위 퇴장 유물(退藏遺物)이라 해서 전란 등과 같은 비상시에 약탈에 대비해 묻어둔 것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 전기 영축사가 어떤 사정이었는지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귀중한 발굴성과로 평가된다.
영축사는 삼국유사에 신라 신문왕 시대인 683년 창건된 사찰로 울산을 대표하는 고대 사찰이다.
2012년 이래 울산박물관이 5개년 계획으로 연차 발굴을 실시한 결과 금당(법당)을 중심으로 동서쪽에 석탑이 자리한 통일신라 시대 전형적인 쌍탑일금당(雙塔一金堂)식 가람 배치임이 확인됐다.
동탑과 서탑은 붕괴된 상태지만 전문가들 검토 결과 복원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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