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게 짖는 삽살개 속 ‘영조의 뜻’…글과 그림으로 새 세상 꿈꾼 두 임금

거세게 짖는 삽살개 속 ‘영조의 뜻’…글과 그림으로 새 세상 꿈꾼 두 임금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23-12-11 11:59
수정 2023-12-1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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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사랑했던 화가 김두량 ‘삽살개’ 첫 공개
국립중앙박물관, 영조 즉위 300주년 특별전
‘탕평한 세상’ 위한 18세기 궁중서화 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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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살개(尨狗圖), 김두량(金斗樑·1696-1763)  그림, 1743년, 글·글씨 영조, 1743년, 종이에 엷은 색, 35.0×45.0cm, 개인 소장,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삽살개(尨狗圖), 김두량(金斗樑·1696-1763) 그림, 1743년, 글·글씨 영조, 1743년, 종이에 엷은 색, 35.0×45.0cm, 개인 소장,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송곳니를 드러낸 삽살개가 고개를 치켜들고 짖어대고 있다. 300여년 전 그림인데도 강인한 개의 눈매에서 무언가를 꾸짖는 듯한 사나움이 여실히 느껴진다. 영조가 아끼던 화원 화가 김두량(1696~1763)이 1743년 그린 ‘삽살개’ 얘기다. 그림 위에 영조가 직접 써넣은 시에서 삽살개의 태도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네가 맡은 임무이거늘 어찌하며 길에서 대낮에 이렇게 짖고 있느냐.” 탕평 정책을 따르지 않는 신하들을 아무 때나 짖는 삽살개에 비유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내년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에서 그간 책으로만 봐왔던 이 그림을 처음 일반에 공개했다. 개의 털을 한 올 한 올 세필로 살린 유려한 솜씨는 만지면 북슬북슬 손에 감길 듯 생생하다. 특히 영조의 서체가 그대로 남아 있어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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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탕탕평평-글과 그림의 힘’에서 영조의 탕평책을 뒷받침해준 박문수(1691~1756)의 38세(왼쪽 전신상), 60세(오른쪽 반신상) 초상화가 나란히 내걸려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탕탕평평-글과 그림의 힘’에서 영조의 탕평책을 뒷받침해준 박문수(1691~1756)의 38세(왼쪽 전신상), 60세(오른쪽 반신상) 초상화가 나란히 내걸려 있다.
이번 전시에는 ‘글과 그림의 힘’으로 탕평한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조선의 두 임금, 영조와 정조가 쓴 글과 당대 최고의 화원 화가들에게 그리게 했던 그림 54건 88점이 나왔다. 18세기 궁중서화의 품격을 한데 감상하는 동시에 글과 그림을 활용해 백성들과 소통하고 신하들을 다스렸던 두 임금의 정치적 의도를 짚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리다.

영·정조 서신, 그림 등으로 신하들을 격려하고 메시지를 보내며 지지 세력을 확대했다. 균역법으로 부족한 세수를 해결하는 묘책을 내며 그의 탕평 정치에 힘을 보탠 박문수(1691~1767) 초상화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진재해가 그린 것으로 38세 때 전신 초상과 60세 때 반신 초상이 나란히 걸려 주름이 깊어지고 수염이 희어진 세월의 변화를 비교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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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贐提學鄭民始出按湖南〉, 정조, 1791년, 비단에 먹, 78.0×161.0cm, 국립진주박물관, 1997년 김용두 기증, 보물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贐提學鄭民始出按湖南〉, 정조, 1791년, 비단에 먹, 78.0×161.0cm, 국립진주박물관, 1997년 김용두 기증, 보물
왕 중심으로 편안한 백성 구현한 ‘화성원행도’
영조 연기한 배우 이덕화 영조 글 녹음 재능기부도
정조는 가까운 신하들이 지방관으로 임명됐을 때 시로 앞날을 격려했다. 정민시(1745~1800)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써준 시도 전시장에 나왔다. 모란, 박쥐 문양이 새겨진 고운 분홍빛 비단에 쓴 시에서 아끼는 신하들과 교감하고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했던 임금의 마음이 짚힌다.

남송 주자의 시를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가 그림으로 그려 정조에게 바친 6폭 병풍 작품 ‘주부자 시의도’(朱夫子詩意圖·1799), 정조가 혜경궁을 모시고 수원 화성에 다녀온 행사를 8폭 병풍에 그린 ‘화성원행도’(華城園幸圖·1795)도 눈길을 끈다.

관람객들은 전시에서 2021년 인기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영조를 연기한 배우 이덕화의 목소리로 영조의 글을 들으며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붕당 정치의 폐해를 걷어내고 새 세상을 만들겠다며 탕평을 내세운 두 임금은 인재를 모으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글과 그림을 낳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편향되지 않는,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회와 개인을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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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자 시의도朱夫子詩意圖〉 6폭 병풍,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 1799년, 비단에 색, 각 폭 125.0×40.5cm, 개인 소장
〈주부자 시의도朱夫子詩意圖〉 6폭 병풍,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 1799년, 비단에 색, 각 폭 125.0×40.5cm,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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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원행도華城園幸圖〉 8폭 병풍, 최득현崔得賢, 김득신金得臣(1754-1822) 등 7인, 1795년, 비단에 색, 각 폭 151.8×66.2cm.
〈화성원행도華城園幸圖〉 8폭 병풍, 최득현崔得賢, 김득신金得臣(1754-1822) 등 7인, 1795년, 비단에 색, 각 폭 151.8×6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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