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전 7시 임 대표의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오전 9시께 치러진 영결식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족과 동료 연극인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배웅했다.
동료 참석자들은 연극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돌아보며 그를 추모했다.
고인의 초기작인 ‘위기의 여자’에 출연한 박정자 배우는 추모사에서 “선생님과는 산울림 소극장 1주년 기념 공연인 ‘위기의 여자’에서 연출가와 배우로 처음 만났다”며 “훌륭한 연출가는 배우에게 정확한 요구를 할 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설득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인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디디’를 연기한 전무송 배우는 “선생님은 우리 연극계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 가르침을 남기셨다”며 “‘좋은 연극을 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연극인 모두 노력하자”고 추모했다.
영결식을 찾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고인은 우리 연극계에 소극장 시대를 열어준 분”이라며 “선생님의 그 뜻을 잘 간직해 어려운 연극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책임을 나누자”고 말했다.
임 대표는 지난 4일 새벽 노환으로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34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서라벌예대에서 수학하고 1955년 연극 ‘사육신’을 연출하면서 연극계에 데뷔했다. 1969년 부인인 번역가 오증자 씨가 번역한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국내 초연한 이래 다양한 작품으로 호평받으며 한국 연극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고인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이력은 극단 ‘산울림’이다.
1970년 산울림을 창단한 고인은 1985년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소극장 산울림을 개관한 이후 완성도 높은 연출로 문제작들을 산울림의 무대에 올렸다.
산울림 소극장은 대학로의 대표적인 소극장으로 최근 폐관한 김민기의 ‘학전’과 더불어 한국 소극장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특히 고인은 극단 산울림을 통해 ‘고도를 기다리며’를 1969년부터 50년간 1천500회 이상 공연하며 22만명이 넘는 관객들을 만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연극뿐 아니라 한국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비롯해 ‘꽃님이!꽃님이!’, ‘지붕위의 바이올린’, ‘키스 미 케이트’, ‘갬블러’ 등을 연출하는 등 뮤지컬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문화예술 공로자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백상예술대상과 동아연극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서울시 문화상, 파라다이스상 문화대상 등에도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