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극한까지 치올라가 아프고 슬픈 희망을 노래

정신 극한까지 치올라가 아프고 슬픈 희망을 노래

입력 2011-07-16 00:00
수정 2011-07-16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물 위에 씌어진】 최승자 지음 천년의시작 펴냄

‘물 위에 씌어진’(천년의시작 펴냄)은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지난해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이 경북 포항의 한 정신병원을 오가며 쓴 작품들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그가 첫머리에 밝혔듯 ‘정신과 병동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왜 처음부터 엄포 놓듯 명토 박아둔 것일까.

그는 몸과 마음이 아프다. 시도 한없이 아프고 슬프다. 몸은 한없이 안으로 잦아들고, 마음은 자꾸 몸 바깥으로 벗어나려 한다. 문학과 철학, 심리학, 인류학 등에 걸쳐 광대무변하게 축적된 인문학적 사유들이 최승자의 시어(詩語) 바깥으로 툭툭 튀어 나가 저 스스로 생명 가진 양 행세하는 모양새가 최승자의 바뀐 시 세계다. 특유의 절제되고 압축된 언어는 여전하지만 절망의 극한을 보여주기보다는 초자연적이고 상징적인 주제로 내뻗쳐졌다.

이번 시집을 통해서는 그가 많이 단련되었음을, 그래서 자신을 객관적으로-한 걸음 떨어져서-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 신경림이 “사람의 정신이 가닿을 수 있는 극한까지 치고 올라가 예사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우주와 사람의 때묻고 얼룩지지 않은 발가숭이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최승자는 ‘나는 다시 돌아왔다/세상의 모든 나무 그림자들이/한없이 길어지는 오후/나는 다시 돌아왔다//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나는 다시 돌아왔지만/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영영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나는 다시 돌아왔다’ 중)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시 ‘하룻밤 검은 밤’에서처럼 ‘그때 누가 자꾸 내 이름을 불러주더라/죽지 말라고/ 아직은 살 때라고’라는 희망도 넌지시 내비친다.

표사를 쓴 시인 김정환이 새삼스레 확인시켜준다. “네 이름이 승자 아니더냐.”라고.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승자(勝者)가 될 수 있다는 어렴풋한 자신감이 시집 앞머리에서 자신의 병력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동력이 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1-07-16 20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전북특별자치도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가능할까?
전북도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전북도는 오래전부터 유치를 준비해 왔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지난해 ‘세계잼버리’ 부실운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상황이라 유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전북도의 올림픽 유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