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 잔]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소장

[저자와 차 한 잔]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소장

입력 2012-04-14 00:00
수정 2012-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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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술, 공자에게 묻지 마라”

논어(論語)를 이리 보고 저리 본 책이 쏟아진다. 왜 논어인가. 사상의 꼭대기에 놓인 공자가 ‘가라사대’ 수많은 명언을 쏟아내시니 이 험한 세상 나침반으로 삼기에 딱이다. ‘논어’의 첫 문장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이다. 평생 공부를 강요하는 이 사회를 이미 2500년 전에 간파했으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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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소장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소장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51) 소장은 다른 생각이다. 특히 ‘논어’를 처세서로 보는 것이 마뜩하지 않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난 이 소장은 “공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논어’는 성공한 책이지만, 공자 자신은 처세에 실패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처세서로 나온다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강조하는 ‘공자의 의미’는 끊임없이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던 지식인이라는 데 있다.

“공자의 일생을 파악하지 않으면 ‘논어’의 많은 말들은 맥락 없이 엉뚱하게 여겨질 뿐”이라는 그는 “그 말들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알아야 비로소 큰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그가 공자의 일생을 조명하고, 그의 말을 분석한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옥당 펴냄)를 내놓은 이유이다.

‘학이시습’을 놓고 보자. 이 구절만 놓고서는 거부감을 느꼈다고 했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외우기만 하는 주입식 교육에, 무지막지한 폭력이 수반되기도 했던 배움이 즐겁다니,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거죠. 특히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에 반기를 들면 사형을 당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왜곡된 역사를 강요당했죠. 그런 역사를 걸어온 우리에게 학(學)이 어찌 즐거울까요.” 그래도 스무 편에 달하는 ‘논어’의 첫 편 첫머리가 ‘학’이라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생겼다. 책을 뒤적거리고 공자의 일생을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공자는 늘 수기(修己)와 제세(濟世), 이인(利人)을 추구했습니다. 안으로는 자신의 몸을 닦고, 밖으로는 세상을 구제하면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죠. 유학자가 평생을 따라야 하는 ‘학’이 이 한마디에 담겨 있는 겁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리를 한 글자로 응축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삶이 어렵고, 권력자의 주변이 시끄러운 이유는 이 한 글자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왜곡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럼 이토록 도의 경지에 오른 공자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 소장은 “전쟁과 권력이 난무한 춘추전국시대에 이상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공자를 현실 군주들이 기용하고 싶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하지만 공자의 삶과 말은 21세기에 부활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난 은자(隱子)들이 많았는데, 공자는 세상에 나가려고 한 사람이었어요. 책에 은자들과의 대화도 많이 썼지만, 그들은 공자에게 ‘안 될 것을 하는 자’라고 조롱했죠. 그 은자들은 다 사라지고 공자는 남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잘못된 천하를 바로잡고,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던, 참지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속수지례(束脩之禮)가 있다. ‘육포 열 조각’이라는 뜻으로, 이것 이상만 가지고 오면 누구든지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공자가 재물을 받아야 가르치겠다는 것이었을까. 하찮은 육포만으로도 가르침과 바꿀 수 있다는, 최초의 ‘반값등록금’ 개념이다. 유교무류(有敎無類)라고, 가르치는 데는 계급이 없다고도 했다. 인불양사(仁不讓師·인에 대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로서, 스승의 잘못도 거리낌없이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논했다.

이 소장을 만난 날이 4·11 국회의원 선거 당일이라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나라의 4년을 책임질 국회의원들의 덕목은 무엇인가.

그는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노나라 실권자인 계강자가 “무도한 자를 죽여서 도를 증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대가 착하고자 하면 백성도 착해지리다.”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너나 잘하라.’이다. “백성에게는 더없이 따뜻했고 지배층에는 한없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인물이 공자였다.”는 그는 “공자 같은 인물이 나타나는 세상이 되면 사람들은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공자의 삶과 말을 살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자가 광야에서 방랑한 시기를 설명하면서 신라 말 최고의 지식인 최치원이 관직을 떠나 노년에 은거한 배경을 설명하고, 도를 실천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공자를 소개하면서 고려 말 자신의 개혁프로그램을 실현하기 위해 이성계과 손잡은 정도전을 비교한다. 또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한 공자를 두고, 조선시대 부당한 토지 문제를 고민하면서 ‘한전론’을 주창한 이익을 떠올리기도 한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2012-04-1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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