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깬 발칙함… 인류 미래를 바꾼 건 ‘놀이’였네

틀을 깬 발칙함… 인류 미래를 바꾼 건 ‘놀이’였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02-10 21:48
업데이트 2017-02-10 22:18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뉴스위크 ‘중요 인물 50인’ 과학 저술가 “규칙 엎은 새로운 시도, 새 시대 만든다”

원더랜드/스티븐 존슨 지음/홍지수 옮김/프런티어/444쪽/1만 6000원

“나태함 조장” 공격받던 ‘커피 하우스’
민주주의 싹 트게 한 공론의 장 역할
옥양목 갖고 싶은 욕망, 산업화 일으켜
노예 무역 등 폭력의 역사 낳기도
AI시대 ‘놀이 맛들인 기계’ 걱정해야


‘사람들이 가장 신바람나게 노는 곳에서 미래가 탄생한다.’
① 커피 하우스는 영국 계몽주의 운동을 상업적, 예술적, 문화적으로 꽃피우는 데 어떤 물리적 공간보다 큰 역할을 했다. 그림은 17세기에 등장한 런던 커피 하우스의 내부. ② 17세기 영국 런던에 등장한 호화로운 인테리어의 상점들은 사람들에게 상점을 둘러보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일깨우며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사진은 1758년 런던 한 상점의 명함. 프런티어 제공
① 커피 하우스는 영국 계몽주의 운동을 상업적, 예술적, 문화적으로 꽃피우는 데 어떤 물리적 공간보다 큰 역할을 했다. 그림은 17세기에 등장한 런던 커피 하우스의 내부. ② 17세기 영국 런던에 등장한 호화로운 인테리어의 상점들은 사람들에게 상점을 둘러보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일깨우며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사진은 1758년 런던 한 상점의 명함.
프런티어 제공
역사가 생존, 권력, 부 등 진지한 것들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고 보는 대다수는 고개를 내저을지도 모르겠다. 놀이, 즐거움, 장난 등 ‘문명의 덤’, ‘보잘 것 없는 오락’ 등으로 치부했던 것들이 미래를 빚어낸 주체라니….

‘원더랜드’를 펼치면 고개를 갸우뚱할 새도 없다. 뉴스위크가 선정한 ‘인터넷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50인’으로 선정된 미국의 과학 저술가 스티븐 존슨은 명확한 문장과 사유로 놀이가 역사를 바꾼 사례를 거침없이 주유한다.

저자는 놀이를 가리켜 규칙을 깨고 새로운 관행을 시도해 보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 때문에 의미심장하고 견고한 형태로 발전하면 수많은 아이디어를 낳는 화수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꿈꾸는 동안 다가올 시대를 창조한다”는 프랑스 역사학자 미셸레의 말처럼 유희의 공간에서 다가올 시대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뼈로 만든 피리, 커피, 후추, 파노라마, 옥양목, 주사위 게임, 봉마르셰 백화점…. 얼핏 보면 조금도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사물과 공간이지만 저자는 공통의 특질을 길어 올린다. 처음 세상에 등장하자마자 새로운 맛, 촉감, 소리, 경험의 놀라움으로 사람들을 매혹한 주인공들이다. 신기함과 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이윤 추구나 기술 발명, 정복, 명예 욕구보다 가장 근원적이고 깊숙한 동력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좇는 과정에서 상업화를 시도하고 신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며 문명을 바꾸게 된다는 게 저자의 통찰이다.

산업혁명을 설명할 때는 기계 공정이 상품을 만들고 운송하는 비용을 낮춰 중상류층과 이들의 소비를 낳았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저자는 정설의 주장과 실제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옥양목을 갖고 싶어 하던 영국 여성들의 열망, ‘쓸데없이’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한 상점을 둘러보는 즐거운 소일거리가 산업화를 일으켜 영국이 1세기 넘게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게 된 출발점이 됐다는 것이다.


‘나태함을 조장하고 선동적인 정치 운동을 부추긴다’며 찰스 2세가 금지 포고문까지 내렸던 17세기 중후반 런던에 탄생한 커피 하우스는 ‘민주주의’를 싹트게 한 평등한 공간이었다. ‘민중의 궁전’으로 불린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의 탄생처럼 커피 하우스는 언론인, 시인, 귀족, 주식 투기꾼, 배우, 입담꾼, 과학자 등에게 모두 열린, 당시로서는 처음 맞이하는 평등한 공간이었다. 이 공론의 장은 근대 언론 기관, 최초의 공공박물관, 보험회사, 공식적인 주식 거래 등을 출발하게 한 ‘기적의 문화융성 촉진제’였다.

하지만 놀이와 쾌락에서 잉태한 산물들이 긍정적인 나비효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옥양목의 재료인 면이라는 신소재는 노예 무역, 아동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 등 지울 수 없는 폭력의 역사도 낳았다. 저자는 ‘여가와 유희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반전은 수많은 신기한 물건과 장치가 유럽의 바깥에서 탄생했다’는 사실도 짚어 내며 유럽인들의 높은 콧대를 민망하게 한다.

요즘 인류는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종 부리듯 부릴 거란 걱정은 번지수가 틀렸다고 고개를 젓는다. ‘어쩌면 기계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할 미래를 걱정할 게 아니라, 기계가 놀이에 맛들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그 점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419쪽)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2-11 18면
많이 본 뉴스
핵무장 논쟁,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에서 ‘독자 핵무장’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평화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대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독자 핵무장 찬성
독자 핵무장 반대
사회적 논의 필요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