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가득한 사회, 탐정 된 음모론자… 그래도 답은 ‘소통’

불신 가득한 사회, 탐정 된 음모론자… 그래도 답은 ‘소통’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4-04-05 03:28
수정 2024-04-05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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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이란 무엇인가/마이클 셔머 지음/이병철 옮김/바다출판사/404쪽/2만 2000원

신뢰 하락·자기방어 심리에 바탕
사회 문제를 각자 이해하는 방식
존재 인정하고 합리적 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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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댈러스를 방문해 카퍼레이드를 펼치던 도중 리 하비 오즈월드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총에 맞은 직후 비밀경호국 요원 클린트 힐이 대통령 리무진 뒷좌석으로 황급히 오르고 있는 모습.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수많은 음모론을 낳아 저자는 케네디 관련 음모론을 ‘모든 음모론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AP 제공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댈러스를 방문해 카퍼레이드를 펼치던 도중 리 하비 오즈월드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총에 맞은 직후 비밀경호국 요원 클린트 힐이 대통령 리무진 뒷좌석으로 황급히 오르고 있는 모습.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수많은 음모론을 낳아 저자는 케네디 관련 음모론을 ‘모든 음모론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AP 제공
32년 전인 1992년 5월에 봤던 영화 한 편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월남전을 다룬 영화 ‘플래툰’으로 명성을 얻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을 다룬 영화로 케빈 코스트너, 게리 올드먼, 토미 리 존스, 도널드 서덜랜드, 케빈 베이컨, 조 페시 등 출연진도 화려하다. 얼마나 재미있게 봤는지 지금은 사라진 고려원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원작 ‘JFK-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진상’이라는 책까지 사서 읽었을 정도다. 책은 아직도 책장 한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영화 ‘JFK’를 비롯한 ‘JFK 암살 사건 음모론’이야말로 ‘모든 음모론의 어머니’라고 지적한다. 지금처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도 없던 시절 미국인들 대부분으로 하여금 이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한 엄청난 음모론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관련 책까지 산 나도 혹시 음모론자일까.

흔히 음모론에 쉽게 빠지는 사람은 학력이나 지능이 낮고 비합리적인 생각을 많이 하거나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음모론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거나 직장 동료들이다. 과학적 회의주의자인 저자마저도 음모론을 믿을 뻔했다고 고백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음모론자는 바보가 아니라 전쟁, 범죄, 빈곤 등 복잡하고 위험한 사회문제를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결하고 싶기 때문에 음모론을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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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를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믿는 ‘9·11 트루서’(truther) 가운데 한 명이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음모론은 정부나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생기기도 한다. AP 제공
9·11 테러를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믿는 ‘9·11 트루서’(truther) 가운데 한 명이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음모론은 정부나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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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그룸 레이크 공군기지는 ‘51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음모론자들에게 51구역은 UFO와 외계인을 연구하는 특수 군사작전 지역이다. 51구역 경계지에 서 있는 민간인 통제 푯말. 위키피디아 제공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그룸 레이크 공군기지는 ‘51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음모론자들에게 51구역은 UFO와 외계인을 연구하는 특수 군사작전 지역이다. 51구역 경계지에 서 있는 민간인 통제 푯말.
위키피디아 제공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음모론의 사례와 확산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JFK 암살 사건을 비롯해 9·11 테러가 미국 정부 자작극이라는 ‘9·11 트루서’(truther), 빌 게이츠가 코로나19 백신에 나노 칩을 심었다는 백신 불신론자 등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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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셔머 박사. 위키피디아 제공
마이클 셔머 박사.
위키피디아 제공
저자인 마이클 셔머 박사는 재러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등과 함께 오랫동안 사이비 과학, 창조론, 미신, 음모론에 대항해 온 인물이다.

저자는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진화론적, 심리학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했다. 인류의 조상이 오래전 동굴 생활을 하던 때부터 생존을 위해 우리 마음속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자동 알고리즘이 있다. 여기에 인지 부조화, 확증 편향, 패턴 만들기, 우리 편 편향 등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개입한다. 최근에는 정부를 비롯한 국가 및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 하락까지 더해진다.

문제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분열과 가짜 뉴스가 넘쳐나게 되며 이런 것들이 다시 음모론자를 확대 재생산하는 식의 피드백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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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부분에 ‘음모론자와 대화하는 기술’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대화의 첫 번째 단계는 상대를 음모론에 빠진 맹신자로 여기는 대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상대방을 ‘한심한 음모론자’로 낙인찍는 순간 대화는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음모론을 파헤치는 이유도 음모론자들을 사회에서 몰아내고 배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들이 이성과 합리성을 되찾도록 돕고자 함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우리 편 아니면 다 죽어라’라는 식으로 막말을 쏟아 내는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 대놓고 편가르기에 앞장서는 언론들이 떠오를 수도 있다. 이들을 보다 보면 사회적 문제에 자신만의 해법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음모론자’들이 차라리 나아 보일지도 모른다.
2024-04-0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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