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의 고장 경남 하동
신라의 문장가 고운 최치원은 자신의 시를 통해 경남 하동을 ‘호중별유천’(壺中別有天)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쉽게 풀자면 ‘호리병 속 별천지’라는 뜻입니다. 섬진강에서 화개장터를 잇는 좁은 길을 지나면 화개, 악양 등 입이 떡 벌어지는 거대한 풍경과 만나게 됩니다. 이를 두고 호리병 속의 별천지 같은 풍경이라고 상찬한 것이지요. 고운 스스로 인식했을지 모르겠으나, 그가 언급한 ‘호리병 지형’은 차를 키우는 데 최적의 여건이 됩니다. 하동 일대에 야생차밭이 많은 건 이 때문이지 싶습니다. 야생차는 생명력이 강합니다. 재배차와 달리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다른 지역의 재배 차밭이 냉해로 시커멓게 타들어가도, 하동에선 형형한 푸른빛의 차밭과 만날 수 있습니다.![화개면 모암마을 주변 산자락에 넓게 펼쳐져 있는 야생 차밭.](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3933_O2.jpg)
![화개면 모암마을 주변 산자락에 넓게 펼쳐져 있는 야생 차밭.](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3933.jpg)
화개면 모암마을 주변 산자락에 넓게 펼쳐져 있는 야생 차밭.
●화개지역 ‘호리병 지형’과 가내 수작업으로 만드는 명품 잎차
하동은 전남 보성, 제주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차 생산권역을 이룬다. 다른 지역에 비해 기계화된 대량생산보다 가내 수작업 형태의 고급 잎차 생산에 치중하고 있다. ‘명산에 명차 난다’는 말이 있듯, 지리산 화개지역은 ‘명차’가 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췄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호리병 지형’이다. 호리병 안쪽엔 따뜻한 공기가 오래 머문다. 다른 지역보다 많은 강수량과 일조량도 차 성장에 적합한 조건을 제공해 준다. 여기에 가가호호 대를 이어온 덖음기술(제다법·製茶法)이 더해져 하동을 차 명산지로 만들었다.
차밭은 화개장터 입구부터 약 12㎞ 구간에 드문드문 걸쳐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정금차밭이다. 정금리 일대의 산자락에 넓게 형성된 야생 차밭이다. ‘차밭’ 하면 연상되는 정연한 풍경과 만날 수 있다. 하동군에서 관광휴양 단지로 개발 중이다. 내년까지 휴양과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각종 기반 시설이 구축될 예정이다.
![모암마을 주변 산자락의 야생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는 주민들. 냉해를 입어 잿빛으로 죽은 다른 지역의 재배차와 달리 푸른빛이 형형하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249_O2.jpg)
![모암마을 주변 산자락의 야생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는 주민들. 냉해를 입어 잿빛으로 죽은 다른 지역의 재배차와 달리 푸른빛이 형형하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249.jpg)
모암마을 주변 산자락의 야생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는 주민들. 냉해를 입어 잿빛으로 죽은 다른 지역의 재배차와 달리 푸른빛이 형형하다.
![갓 따온 야생차 잎.](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342_O2.jpg)
![갓 따온 야생차 잎.](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342.jpg)
갓 따온 야생차 잎.
인근에 차나무 시배지가 있다. 약 1200년 전, 신라 김대렴이 중국에서 가져온 차 씨앗을 처음 뿌린 곳이라 전해진다. 차시배 기념석과 대렴공 차시배 추원비, 진감선사 차시배 추앙비 등이 세워져 있다. 정금차밭과 차나무 시배지를 잇는 2.7㎞ 길이의 ‘천년차밭길’도 조성돼 있다. 차 시배지 아래엔 하동야생차박물관이 있다. 방문 전 예약하면 전통 덖음차를 만들거나 다례시연 등에 참여할 수 있다. 너른 야생차밭에서 직접 차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다원도 있다. 가족 나들이로 제격인 곳들이다. 그중 하나가 매암다원이다. 은은한 한국식 전통 홍차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잭살’도 맛볼 수 있다. 이 일대에서 몸이 아플 때 끓여 먹었다는 토속 발효차다. 다원은 지키는 이가 없다. 손님 스스로 차를 끓여 마신 뒤 3000원을 무인함에 넣으면 된다. 원형에 가까운 야생차밭 풍경과 만나려면 좀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모암마을 맞은편 산자락에 야생차들이 너른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일대의 야생차들은 보성 녹차밭에서 연상되는 정연함과 거리가 멀다. 사초처럼 몽글몽글 뭉친 모습이 꼭 수많은 해파리떼를 보는 듯하다.
![장작불로 달군 무쇠솥에 찻잎을 덖고 있는 비주제다 홍만수 대표. 대부분의 제다 집들이 가스 버너를 이용하는 것에 견줘 꽤 이례적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3958_O2.jpg)
![장작불로 달군 무쇠솥에 찻잎을 덖고 있는 비주제다 홍만수 대표. 대부분의 제다 집들이 가스 버너를 이용하는 것에 견줘 꽤 이례적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3958.jpg)
장작불로 달군 무쇠솥에 찻잎을 덖고 있는 비주제다 홍만수 대표. 대부분의 제다 집들이 가스 버너를 이용하는 것에 견줘 꽤 이례적이다.
하동 일대에 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의 고사가 전하는 곳이 많다. 쌍계사엔 최치원의 글이 담긴 진감선사 부도비, 꽃담의 글씨 등이 전한다. 범왕리엔 푸조나무가 있다. 최치원이 땅에 꽂은 지팡이에서 움이 터 자랐다는 노거수다. 푸조나무 건너편에 세이암이 있다. 최치원이 지리산에 들어가기 전 귀(耳)를 씻었다(洗)는 너럭바위다. 바위 위에 ‘세이암’이란 글자가 음각돼 있지만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모암마을의 야생 찻잎으로 끓여낸 차. 싱그러운 향이 일품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039_O2.jpg)
![모암마을의 야생 찻잎으로 끓여낸 차. 싱그러운 향이 일품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039.jpg)
모암마을의 야생 찻잎으로 끓여낸 차. 싱그러운 향이 일품이다.
수채화 같은 초록빛과 만나려면 송림공원(천연기념물 445호)을 찾아야 한다. 조선 영조 21년(1745년)에 조성된 방풍림이다. 섬진강 주변의 너른 백사장에 소나무 노거수 750여 그루가 섬진강 맑은 물과 어우러져 있다. 오랜 세월을 버텨 온 ‘맞이 나무’, ‘원앙 나무’, ‘못난이 나무’ 등이 편안한 쉼터를 만들어 낸다.
![구재봉 활공장에서 굽어본 풍경. 지리산과 섬진강 줄기, 너른 악양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016_O2.jpg)
![구재봉 활공장에서 굽어본 풍경. 지리산과 섬진강 줄기, 너른 악양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016.jpg)
구재봉 활공장에서 굽어본 풍경. 지리산과 섬진강 줄기, 너른 악양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19~22일 화개면과 악양면 일대에서 열린다. 지난해 11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하동녹차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사다. 이를 기념하는 볼거리와 먹거리, 체험 행사들이 다양하게 준비된다. 이번 축제에서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중국 푸얼, 푸저우, 일본 시즈오카 차 전문가 초청 홍보관과 9개 지자체의 초청 홍보관이 함께 운영된다. 주요 행사로 세계 10개국의 차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차 문화 페스티벌, 다례경연대회, 하동 티 블렌딩 대회 등이 열린다.
글 사진 하동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55
찻집:화개면 일대에 실제 차를 맛볼 수 있는 찻집이 부쩍 늘었다. 제다집만 몰려 있던 예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비주제다(883-1696)는 모암마을 야생차밭을 소유한 업체다. 차밭에서 찻잎을 딴 뒤 모암마을의 ‘만수가 만든 차’로 가져와 덖어 판다. 상호와 동명의 차를 사거나 맛볼 수 있다. 특히 여러 제다 과정을 거치지 않고 덖은 뒤 곧바로 먹는 차맛이 별미다. 주인장에게 청하면 맛볼 수 있다. 윤슬당(010-8552-7061)은 한방차 전문점이다. 1층은 카페, 2층은 펜션이다. 일반 차보다는 건강식품을 곁들인 차를 주로 팔고 있다. 윤슬홍차, 미인차 등이 대표 메뉴다. 차와 관련된 소품도 판매한다. 정금차밭에서 강 건너 맞은편에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집은 쌍계명차(883-2440)다. 녹차, 발효차, 꽃차, 대추차 등 몸에 좋은 차와 복분자 빙수, 녹차 빙수 등 다양한 메뉴를 갖췄다.
![하동 혜성식당 참게탕.](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315_O2.jpg)
![하동 혜성식당 참게탕.](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5/09/SSI_20180509184315.jpg)
하동 혜성식당 참게탕.
2018-05-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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