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올릴 신도주 만들어 볼까
설을 2주 앞둔 지난 23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국순당 본사에 30여명이 모였고,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유리병을 하나씩 품에 안은 채 헤어졌다. 전통 차례주인 ‘신도주 빚기 교실’에 참여한 인원들이다. 전통 차례주의 연원과 빚는 법에 대한 강의를 듣는 데 1시간을 할애하고, 권희숙 국순당연구소 연구원을 따라 전통주를 빚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하니 과거 금주령이 내려져도 집집마다 ‘밀주’가 성행했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6/01/31/SSI_20160131174624_O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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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반세기 이상 술과 부엌이 단절의 시간을 보내왔지만, 의외로 전통 차례주를 빚는 재료는 주변에 가깝게 있고 만드는 방법 또한 과일주 담그기보다 과하게 까다롭지 않았다.
●1단 담금 때 밀가루 넣으면 발효 잘돼
원래 추석에 햅쌀로 빚어 먹던 술인 ‘신도주’엔 햅쌀 1.5㎏, 물 2.25ℓ, 전통 누룩 150g, 밀가루 15g이 필요하다. 고문헌을 보면 전통주 중에서도 신도주에 대해 “맛이 맵다”고 했는데, 이는 신선한 햅쌀로 빚다보니 도수가 강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신도주를 빚으면 16도까지 도수가 높아진다고 권 연구원은 31일 설명했다. 햅쌀, 물, 밀가루는 부엌에 상비된 재료이고 누룩 역시 인터넷에서 손쉽게 주문할 수 있다. 요즘에는 누룩별로 조절해야 할 물량과 쌀량이 표시된 설명서까지 첨부되어 판매된다. 쌀만 들어가면 술이 더 깔끔하고 고급스러워질 것 같은데 밀가루를 넣는 이유에 대해 권 연구원은 “밀가루의 단백질 성분이 들어가면 발효가 더 잘된다”고 설명했다.
신도주는 1단과 2단으로 나눠 담는다. ‘신도주 빚기 교실’에선 이날 햅쌀의 3분의1 분량인 500g을 떼어내 소금 없이 만든 백설기를 잘게 부숴 누룩, 밀가루, 물 1ℓ와 잘게 섞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한 뒤 25~27도에서 사흘 동안 놓아두면 1차 발효가 이뤄지는데 여기까지 ‘1단 담금’이다.
사흘 뒤 남은 분량인 쌀 1㎏을 쪄서 물 1.25ℓ와 함께 섞어주는 ‘2단 담금’ 과정을 거친다. 쌀은 2시간 정도 불려 물을 뺀 뒤 1시간 정도 찌면 된다. 손톱으로 쌀을 으깼을 때 중간에 심이 남지 않으면 술에 들어가는 고두밥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집에 쌀을 찔 들통이 없다면, 분량의 쌀을 밥으로 만들어 넣어도 된다. 밥을 할 시간마저 내기 어려워 즉석밥을 고두밥으로 활용한다면, 쌀의 분량을 역산해 즉석밥 1.25㎏으로 분량을 맞추는 게 적당하다. 단 쌀을 찐 고두밥을 넣을 때보다 밥을 넣었을 때, 직접 한 밥 대신 즉석밥을 넣었을 때 완성된 차례주에서 밥의 독특한 냄새가 난다. 시중에서 파는 가래떡이나 백설기를 ‘2단 담금’에 활용해도 되지만, 함유된 설탕이나 소금이 맛에 영향을 미친다.
권 연구원은 “밥을 넣을 때보다 떡을 빚어 넣을 때, 백설기를 빚어 넣을 때보다 구멍이 뚫린 떡을 넣을 때 술맛이 더 좋아진다”면서 “정성이 들어갈수록 술의 맛이 깊어지는 게 집에서 빚는 술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열흘쯤 지나면 차례주가 완성되는데, 마치 알람시계처럼 차례주 스스로 숙성을 알린다. 발효되는 동안 들리던 뽀글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향긋한 술 향기를 내기 때문이다.
●남은 차례주로 고기·생선 재워두면 잡내 싹
직접 빚은 차례주라면 차례를 지낸 뒤에도 소중히 보관해야겠지만, 시중에서 산 청주를 처리하는 일은 주부들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된다. 좋은 재료로 빚은 차례주는 마셔서 없애는 방법 외에도 요리에 쓸 수 있는 다목적 술이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차례주인 청주는 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고, 생선살을 단단하게 만든다”면서 “두 경우 모두 각종 잡냄새를 잡는 데에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청주 사용법도 손쉬워 고기류를 손질한 뒤 남은 차례주에 20~30분 동안 재워두면 된다. 묵은 쌀을 사용해 밥을 지을 때 물과 함께 청주를 한두 수저 넣으면 묵은 냄새를 줄여주고, 밥맛이 좋아진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2016-02-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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