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에 군대를 제대하고 경남 고성에서 ‘일일공부’라는 배달 학습지 지국을 인수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로 배달하고 판촉활동을 하느라 매일 100킬로미터 이상씩 비포장도로를 달렸습니다. 처음 인수받을 때는 90부였는데 두 달을 그렇게 하니 550부가 됐습니다. 그렇게 작은 장사를 하다가 나이 서른에 금연파이프 사업을 하면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겁 없이 돈을 물 쓰듯 했습니다. 그러다 장사에 크게 실패했고, 쌀이 떨어져 밥도 못 먹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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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서 좋은 물건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250만 원만 있으면 조끼 5천 장을 인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당 잡힐 집도 없던 저는 무작정 사채업자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게 다섯 시간을 버티자 사채업자는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리어카를 빌려 조끼를 잔뜩 싣고 핸드 마이크를 들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사흘이 지나니 손발이며 입술이 다 부르텄습니다. 열흘 뒤 결산해보니 사채를 갚고도 500만 원이 남았습니다.
그 돈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잡아 직접 판매에 나섰고, 서른네 살이던 1984년 천호식품을 설립했습니다. 1990년대 달팽이 건강식품으로 대박을 터뜨린 나는 부산에서 현금 보유 기준 100등 안에 들 정도로 잘나갔습니다. 사업이 잘되니까 계속 확장했습니다. 본업이 건강식품인데 찜질방, 황토방, 서바이벌 게임 사업 등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엠에프를 만났습니다. 순식간에 추락했습니다. 이젠 빚 많은 사람 100등 안에 들었습니다.
바닥으로 내려가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밥 먹을 돈 5천 원이 없어 소주 한 병에 소시지 하나로 허기를 달래야 했습니다. 그때 휴대전화 액정에 이렇게 썼습니다. ‘쑥을 팔자, 못 팔면 죽는다.’ 당시 우리 회사에는 강화사자발쑥진액이 있었는데, 그걸 팔아야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아침 6시 30분이면 서울 강남역으로 가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돌렸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을 타면 맨 첫 칸부터 끝 칸까지 선반에 전단을 올려놓았습니다.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전단을 돌렸습니다. 직원이 말리면 사정했습니다. “이거 못 팔면 저는 죽습니다.”
번듯한 회사 사장이 하루아침에 몰락해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하지 않았을까요? 누구라도 만나면 어떻게 할까 두렵지 않았을까요? 전혀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재기를 꿈꾸면서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간절히 원하면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옵니다. 20억 원의 빚을 1년 1개월 만에 다 갚았습니다. 5년 만에 강남 역삼동에 사옥을 지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간절히 원했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뛰다 보면 넘어질 때가 있지요. 나 역시 몇 차례나 넘어져 그대로 경기를 포기할까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안에서 놀라운 오기가 생겨났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차이는 10미터에 있습니다. 100미터를 뛰던 사람에게 200미터를 더 뛰라고 하면 누구라도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10미터만 더 뛰라고 하면 그건 얼마든지 뛸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성공, 한 번의 실패에 웃고 울고 하지 맙시다. 대신 늘 10미터를 더 뜁시다. 그러면 성공은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김영식 | 천호식품 회장입니다. ‘뚝심대장’ ‘인간발전기’라고도 불리는 그는 밑바닥부터 정상까지 올라오며 터득한 성공 노하우를 담아 책 <10미터만 더 뛰어봐>를 썼습니다. 바쁜 중에도 국민 모두가 부자 되는 그날을 위해 ‘뚝심카페’ 운영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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