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삶 속에서도 빛나는 그들 눈에서 희망을 봤어요”
아프리카 오지 여행은 마음만 앞선다고 쉽게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여정도 험난하다. 의식주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이다. 자칫하면 풍토병에 걸릴 수도 있어 황열병, 뇌수막염 예방주사를 미리 맞고 체류기간 내내 말라리아 예방약도 챙겨 먹어야 한다. 한류스타를 넘어 월드스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톱스타 이병헌이 지난달 2일부터 8박 9일 일정으로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부에 있는 말리에 봉사여행을 다녀왔다. KBS 특별기획 ‘희망로드대장정’에 합류해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나눠 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모험에 버금가는 수준의 아프리카 여행을 결정한 것부터 관심을 모은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꽉 짜인 스케줄에 따라 오지의 마을을 방문하고 그곳 사람들을 만났다. 찜통 같은 더위와 모래바람 속에서의 일정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방문하면서 무엇을 느꼈고 아프리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말리 일정을 함께하며 틈틈이, 그리고 마지막 일정이었던 수도 바마코의 니제르강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서 이병헌에게 물었다.![가난과 질병, 급속한 사막화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말리를 찾은 톱스타 이병헌이 지난달 5일 투아레그족 마을을 방문해 위로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안과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많지만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0938.jpg)
![가난과 질병, 급속한 사막화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말리를 찾은 톱스타 이병헌이 지난달 5일 투아레그족 마을을 방문해 위로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안과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많지만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0938.jpg)
가난과 질병, 급속한 사막화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말리를 찾은 톱스타 이병헌이 지난달 5일 투아레그족 마을을 방문해 위로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안과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많지만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처음이다. 많은 단체들에서 참가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빈곤국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지만 나까지 다른 연예인들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나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생각이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런 좋은 의도의 기획에 참여해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다른 많은 이들에게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면 더욱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게 참여 동기라면 동기다. 어떻게 진정성 있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많이 고민했다.
→열흘 가까이 스케줄을 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6월 말부터 영화 ‘지아이조 2’ 촬영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그에 앞서 5월 중에 일본에서 4개 도시를 순회하며 팬미팅을 할 계획이었는데 일본 대지진 때문에 취소했다. 갑자기 생긴 천금 같은 시간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마침 타이밍 맞춰 이런 좋은 의도의 기획과 함께 촬영 제의가 왔다.
![모잠블레나 마을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나오자 마을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0948.jpg)
![모잠블레나 마을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나오자 마을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0948.jpg)
모잠블레나 마을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나오자 마을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
![사하라사막의 대기근으로 환경난민이 된 투아레그족의 족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병헌.](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0957.jpg)
![사하라사막의 대기근으로 환경난민이 된 투아레그족의 족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병헌.](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0957.jpg)
사하라사막의 대기근으로 환경난민이 된 투아레그족의 족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병헌.
-사실 말리에 대해서는 사전 지식이 많지 않았다. 187개국 중 171번째로 가난한 나라이며 심하게 사막화되어 기후나 환경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라는 정도. 처음 도착했을 때 온통 검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놀랐는데 그런 놀라움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며칠간 여러 마을을 방문하고 실제로 이곳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정말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놀라울 정도였다. 내 영혼이 맑게 씻기는 느낌을 받았다.
→날씨가 무척 덥다. 기후에 좀 익숙해졌나.
-추위보다 더위에 잘 견디기 때문에 기후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속으로 ‘이 정도 더위쯤이야’ 했고, 도착한 날 푹 찌는 열기를 접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실제로 생활해 보니 그 이상이었다. 지표온도 47도, 48도까지 올라가는 찜통 더위 속에서 바위산을 오르면서 이러다가 탈진이 와서 쓰러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적응하려야 적응할 수 없는 더위다.
→더위와 모래바람 등 악천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었나.
-며칠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느껴서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덥고 척박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버텨 내는 것이 용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이런 환경에서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 텐데 이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서 보니 사람들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열심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희망의 빛을 봤다고 할까. 아주 느리고 조금씩이지만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감탄스러웠다.
![수도 바마코에 있는 파스퇴르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있는 말리 어린이를 찾은 이병헌과 함혜리(왼쪽) 문화에디터.](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1007.jpg)
![수도 바마코에 있는 파스퇴르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있는 말리 어린이를 찾은 이병헌과 함혜리(왼쪽) 문화에디터.](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1007.jpg)
수도 바마코에 있는 파스퇴르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있는 말리 어린이를 찾은 이병헌과 함혜리(왼쪽) 문화에디터.
![이병헌이 말리국립맹아학교 기숙사에서 소아 백내장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바이수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1017.jpg)
![이병헌이 말리국립맹아학교 기숙사에서 소아 백내장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바이수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6/02/SSI_20110602181017.jpg)
이병헌이 말리국립맹아학교 기숙사에서 소아 백내장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바이수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람이 힘든 환경에 있으면 모두가 힘들어하고 규율도, 질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름대로 질서와 규율이 있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모습을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들에게 분명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순수하고 맑다는 것을 느꼈다. 피부는 검지만 하얀 도화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한한 가능성이 느껴졌다.
→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상에 남는 사람들을 꼽자면.
-두 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서 만난 도곤(Dogon)족 사람들이 인상에 남는다. 멀리서는 절벽에 아파트 창문처럼 구멍이 뚫린 것이 보였는데 40분 정도 바위산을 올라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절벽 안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원시인들을 그대로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 같기도 했다. 정말 신기했다. 콜라병을 들고 너무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부시맨이 떠올랐다. 우리가 눈 수술을 시켜준 7살 남자아이 바이수의 아버지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을 제외한 세 식구 모두가 앞을 보지 못한다. 처음엔 고지식하고 보수적이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가부장적인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장 힘든 사람이 그였다. 부인과 아들이 수술받은 뒤 앞을 보게 되자 행복해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절대적 빈곤에 처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양부족과 기후, 환경 등이 이들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요인이다. 아픈 곳을 수술해 주고, 병을 고쳐주고, 전기를 설치해 주는 것이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일이겠지만 이런 일회성 도움을 주는 것으로 그치기보다는 눈을 고치는 방법, 전기를 만드는 방법 , 경제적 이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의미 있는 도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시적인 도움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쳐 준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해 전기를 활용하도록 도움을 줬다. 느낌이 어땠나.
-전기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고마움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작은 도움이었지만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어서 기뻤다. 우리가 할 일이 아직 많다는 것, 우리의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 백내장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의 수술을 지원했다. 수술 후 시력을 되찾은 아이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는 무표정하고 슬퍼 보였던 아이가 수술 후 거울을 들여다 보며 환하게 웃었다. 눈 수술을 한 것이 이들에게 큰 미래를 준 것이라는 생각에 굉장히 행복했다. 불편했던 눈을 고치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만큼 그들이 더 큰 꿈을 품고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그런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 사진 바마코(말리)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곁에서 지켜본 그는…
출발부터 귀국까지 8박 9일 동안 전 일정을 함께 하면서 곁에서 지켜 본 이병헌은 한마디로 ‘매력적인 남자’였다. 환한 미소로 말리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때로는 수준 높은 유머로 지친 스태프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싸줬다는 고추장을 함께 나누고 깔깔한 전투식량도 마다하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비포장 도로를 몇 시간 달리고 땡볕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릴 때에도 불평 없이 일정을 소화해 냈다. 가슴 설레게 만드는 이 남자. 믿기지 않지만 어느새 불혹의 나이를 넘겼다. 모잠블레나 마을로 가는 랜드크루저 안에서 결혼에 대해 슬쩍 물었다. “절실하게 하고 싶다.”고 한다. 상대의 나이는 25~34세면 좋겠단다. 조건을 물었더니 “코드가 맞는 사람”이면 된단다.
2011-06-03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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