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버는 돈 4만원…이열치열 삶의 현장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전쟁’이 한창이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힘겨운 방학 나기’를 하는 그들의 일터를 찾았다.“빨리 빨리 던져! 수박 안 깨지게 조심하고.” 중앙대 3학년 배일섭(27)씨의 하루는 학기 때보다 더욱 바쁘다. 방학을 맞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대형 상점에서 농산물 판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루 3000여통의 수박을 매장에 진열하고 파는 일이다. 배씨는 오전 8시부터 9시간 동안 일을 하고, 시간당 5000원씩 총 4만원가량을 번다. 온종일 선 채로 일하고 나면 몸을 가눌 힘조차 없다. “공부는 물론 대학생이면 누구나 하는 스펙을 챙길 시간도 없어요.” 한 해 학교에 내는 등록금만 800만원.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생활비까지 벌어야 한다. “등록금이 300만원 정도만 해도 어떻게 해볼 수 있을 텐데….” 방학 동안 공부 안 하고 꼬박 일만 해도 등록금을 다 벌지 못할까 봐 걱정인 배씨다.
경기 과천 서울 경마공원의 쇼맨. 질서유지와 금연을 당부하는 공연이 이들 대학생의 일이다.
대형마트의 홍보 아르바이트를 하는 최민진(20)씨가 더위를 식히려 황소 탈을 벗고 땀에 젖은 머리를 흔들고 있다.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개장을 앞둔 조회 시간에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인사 연습을 하고 있다.
한국해양대 1학년 서대일(19)씨의 하루 일과는 서울 서초구청에서 시작된다. 구청에서 보존 기록물 정리 업무를 맡은 서씨는 오후 3시까지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운이 좋은 편이에요.” 그는 퇴근 후 자신이 번 돈으로 영어학원에 다닌다. 행정 경험도 쌓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관공서 아르바이트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다. 서초구청은 관내에 사는 대학생 50명을 뽑기로 했는데 500여명이 몰려들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계층 자녀를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는 공개 추첨을 통해 선발했다. 평균 10대1의 관문을 뚫어야 관공서에서 잠시 일할 수 있는 ‘행운’을 안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배일섭씨가 수박을 받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천 수영장 바닥을 청소하는 대학생들.
양재천 수영장에서는 전날 폭우로 침수됐던 수영장의 물청소가 한창이다. 뙤약볕 아래 수영복 차림의 대학생들이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며 바닥의 오물을 씻어내고 있다. 이들 중 홍일점인 선문대 4학년 이아름(24)씨. 그녀는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야외 수영장에서 일감을 얻었다. “평소 수영에 자신이 있었고 전공(체육학)도 살릴 수 있어서 수상안전요원에 지원했어요.” 검게 그을려가며 손에 쥐는 돈은 하루 5만 5천원. 두달간 벌어도 등록금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고액 아르바이트’에 속한다. ‘고액’인 만큼 그녀의 근무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다. 위급 상황이 닥치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달린다.’ 서울 종로에서 피자 배달을 하는 대학생.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김명호(26)씨가 기린 먹이통을 나무에 매달고 있다.
이처럼 방학 중 아르바이트는 필수라고 여길 만큼 많은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등록금을 벌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일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대학생 23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3.9%가 ‘등록금을 내고자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밝혔다. 특히 19.5%는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고 일하기도 했다’고 응답했다. 방학이 더 이상 휴식이나 재충전의 시간이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만났던 대학생 대다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청운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맘 놓고 공부하고 싶다.”는 이아름씨는 “반값은 아니라도 조금이라도 내린 등록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정부와 대학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올여름. 이 계절이 지나면 대학생들 모두가 자신들이 흘린 땀의 가치에 대해 실망하지 않는 가을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2011-07-16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