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경북 상주 ‘쾌재정’
속리산에서 흘러내린 이안천이 내려다보이는 경북 상주의 기장리 언덕에는 쾌재정(快哉亭)이 있다. 조선 초기 문장가 나재(懶齋) 채수(蔡壽·1449~1515)가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 부인 안동 권씨 고향에 정착해 지은 정자다. 상주와 점촌을 잇는 경북선 철도가 시내를 건너고 있어 급할 것 없이 달려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채수라면 ‘설공찬전’(薛公瓚傳)이라는 소설을 써서 조선 최대의 필화 사건을 일으킨 인물이다. 쾌재정은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자주 찾았다는 중국 쉬저우(徐州)의 정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채수와 쾌재정에 얽힌 이야기는 문장과 글씨에 두루 뛰어났던 남곤(1471∼1527)이 지은 나재 무덤 앞 신도비 비문에 보인다.![상주 쾌재정. 나재 채수가 소설 ‘설공찬전’을 쓴 곳이다. 한문으로 씌어진 이 소설은 국문으로도 번역되어 ‘홍길동전’을 제치고 한국문학 역사상 최초의 한글 소설로 떠올랐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2958_O2.jpg)
![상주 쾌재정. 나재 채수가 소설 ‘설공찬전’을 쓴 곳이다. 한문으로 씌어진 이 소설은 국문으로도 번역되어 ‘홍길동전’을 제치고 한국문학 역사상 최초의 한글 소설로 떠올랐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2958.jpg)
상주 쾌재정. 나재 채수가 소설 ‘설공찬전’을 쓴 곳이다. 한문으로 씌어진 이 소설은 국문으로도 번역되어 ‘홍길동전’을 제치고 한국문학 역사상 최초의 한글 소설로 떠올랐다.
![이안천 건너에서 바라본 쾌재정.](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014_O2.jpg)
![이안천 건너에서 바라본 쾌재정.](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014.jpg)
이안천 건너에서 바라본 쾌재정.
나재는 쾌재정에서 글을 쓰곤 했다. ‘늙은 내 나이 예순일곱인데, 지난 일 생각하니 아득히 멀구나’로 시작하는 한시 ‘쾌재정’도 그렇게 태어났다. 나재가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것도 쾌재정에서 지은 소설 ‘설공찬전’ 때문이다. 귀신이 주인공인 이 작품은 죽은 이의 혼령이 현실 세계에 나타나 저승 세계의 소식을 전한다는 이야기다.
![채수의 무덤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 비각.](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026_O2.jpg)
![채수의 무덤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 비각.](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026.jpg)
채수의 무덤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 비각.
![채수 신도비. 드물게 사자 모양으로 새겨진 받침돌이 인상적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042_O2.jpg)
![채수 신도비. 드물게 사자 모양으로 새겨진 받침돌이 인상적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042.jpg)
채수 신도비. 드물게 사자 모양으로 새겨진 받침돌이 인상적이다.
![1996년 새로 세워진 채수 신도비.](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059_O2.jpg)
![1996년 새로 세워진 채수 신도비.](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059.jpg)
1996년 새로 세워진 채수 신도비.
사헌부는 ‘정도(正道)를 어지럽히고 인민을 선동한 율(律)’을 들어 채수를 교수(絞首)에 처해야 한다고 주청했다. 그런데 훗날 영의정을 지낸 만보당 김수동(1457~1512)의 변호가 흥미롭다. 그는 “형벌과 상은 중용을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면서 “이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태평광기’나 ‘전등신화’를 지은 자들도 모조리 베어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태평광기’는 송나라 태종의 명으로 정통 역사책에 실리지 않은 기록과 소설을 500권에 모은 중국 역대 설화집이다.
‘전등신화’는 명나라 구우의 소설로 조선에서도 필독서가 됐다. 매월당 김시습이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금오신화’를 쓴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죽이는 것은 지나치다’는 중종의 뜻에 따라 채수는 파직에 그쳤다.
![채수의 위패를 모신 임호서원.](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116_O2.jpg)
![채수의 위패를 모신 임호서원.](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3116.jpg)
채수의 위패를 모신 임호서원.
![임호서원 편액.](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2538_O2.jpg)
![임호서원 편액.](https://img.seoul.co.kr//img/upload/2018/06/29/SSI_20180629172538.jpg)
임호서원 편액.
‘설공찬전’이 다시 햇빛을 본 과정은 이렇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96년 이복규 서경대 교수에게 이문건(1494~1567)이 지은 ‘묵재일기’의 내용을 살피고, 뒷장에 적힌 한글 기록도 검토해 달라고 의뢰한다. 이 교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일부가 그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설공찬전’, 그것도 한글본이었기 때문이다.
“언어(諺語)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킨다”는 사헌부의 탄핵 내용 그대로였다. ‘셜공찬이’라는 한글 제목 아래 3472자가 남아 있었다. 필사를 도중에 중단해 전체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이렇게 ‘설공찬전’은 허균의 ‘홍길동전’을 제치고 한글로 적힌 최초의 소설이 됐다.
쾌재정은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상주 나들목에서 멀지 않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3번 국도를 타고 문경 방향으로 북상하다 이안교차로에서 왼쪽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을 수 없으니 ‘상주시 이안면 가장리 230-1’이라는 주소를 이용해 찾아가는 것을 권한다.
지금의 쾌재정은 18세기 중반 중건한 건물이다. 벌판 가운데 솟은 봉우리에 있으니 거칠 것 없는 시야를 자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와 풀에 둘러싸여 주변 풍광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안천 건너에서 바라봐도 지붕의 모습만 어렴픗하다.
채수의 무덤은 쾌재정 남쪽의 공검면 율곡리에 있다.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나재채수신도비’를 치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율곡리 길가에는 최근 것으로 보이는 신도비도 있다. 옛 신도비가 풍우에 시달려 비문을 읽을 수 없게 되자 1996년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셜공찬이’의 발굴이 계기가 됐음을 짐작케 한다.
북쪽 야산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옛 신도비의 비각이 보인다. 비석은 당당한 모습이다. 상주에 남은 신도비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인상적인 것은 신도비의 받침돌이다. 대개 거북이 모양인데, 독특하게도 사자다. 커다란 비석을 등에 이고 있는 사자의 모습은 귀엽기만 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무덤이다.
채수의 위패를 모신 임호서원은 무덤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너머 동쪽에 있다. 역시 ‘상주시 합창읍 신흥리 377’이라는 주소로 찾아가는 것이 좋다. 서원은 1693년 함창 서쪽 10리 입암산 아래 검암서원으로 출발했다. 1871년 대원군이 훼철한 것을 1988년 지금 자리에 다시 세웠다. 간소한 데다 연륜도 짧은 만큼 서원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사당에는 경현사(景賢祠)라는 편액이 붙었다.
‘설공찬전’의 배경은 전북 순창이다. 학계는 나재가 순창 설씨 족보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을 섞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설공찬의 증조할아버지로 나오는 설위는 대사성을 지낸 세종시대 실존 인물이다. 하지만 설공찬이라는 이름은 족보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중종실록에는 채수에 대한 탄핵 과정에 검토관 황여헌의 “설공찬은 채수의 일가이니, 반드시 믿고 혹하여 지었을 것”이라는 발언이 실려 있다. 설공찬은 채수의 친척인 실존 인물이었고, 소설 또한 체험담에 근거했을 수 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순창군은 순창 설씨 집성촌이 있는 금과면에 ‘설공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2018-06-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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