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 ‘에밀’…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루소의 대표작 ‘에밀’은 ‘에밀’이라는 주인공과 스승의 일화를 중심으로 인간의 성장과 배움에 대해 기술한 교육서다. 인간의 품성과 자연적인 성장 과정을 고려한 교육 방식 때문에 자연주의 교육의 복음서로 여겨진 이래 ‘에밀’은 지금까지도 교육학의 고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판금과 분서, 체포명령과 망명에 이르기까지 루소는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고난을 겪게 된다.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4부에 등장하는 ‘사부아 신부의 신앙고백’이었다. 루소는 사부아 신부의 목소리를 빌려 신의 계시를 확언하는 교회와 이성적 앎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철학자 모두를 비판한다. 교회와 철학은 각각 신앙과 이성의 이름으로 사유를 구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소가 생각하기에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규율화하는 결정적 기제는 교육이다. 따라서 ‘에밀’을 단순한 교육서로 읽을 경우 우리는 당혹스러움에 부딪히게 된다.
루소는 에밀의 환경과 성격, 수업 장소와 내용, 교사와 대화가 가져올 효과 등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사실 에밀이라는 인물을 비롯한 모든 상황은 상상의 산물이다. 무균질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완벽하게 이상적인 교육 상황. 때문에 루소는 ‘에밀’의 교수법을 따라 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할 거라고 말한다. 학습자를 포함한 모든 상황을 교사의 의도대로 세팅할 수 없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개입한다면 ‘에밀’의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루소가 제시한 ‘자연주의 교육’의 아이러니가 있다.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고, ‘자연’이란 질서 속의 예기치 않음을 그 본질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연주의 교육이란 ‘의도하지 않은 인간’을 만들어 내는 실험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을 통해 알 수 없는 결과를 희망하기. 교회와 철학이 ‘에밀’을 불온하게 본 까닭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어디를 가나 불가해한 신비가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어. 그것은 우리 감각의 영역을 벗어나지. 그것을 간파하기 위한 오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상상력밖에 없네. 우리 각자는 그 상상의 세계를 통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터나가지. 하지만 자신의 길이 목적지를 향한 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2011-02-07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