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철원 물윗길과 역사문화공원
어제는 책 한 권을 읽다가 ‘따뜻한 얼음’이라는 문구를 떠올렸습니다. 온몸이 찌릿하도록 시렸지만 심장을 두드리는 글의 결정이 온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겨울은 따뜻하신가요? 한탄강의 얼음장 옆 물윗길을 걷다가, 반세기 넘은 노포의 막국수를 후루룩 비벼 삼키다가 저는 박준 시인이 말한 여름밤 철원의 ‘화기’(火氣)를 떠올립니다. 어떤 그리움은 늘 지구 반대편의 시간에 속한 듯합니다.![강원도 철원 순담계곡 초입의 풍경.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한탄강의 주상절리를 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한탄강 물윗길은 순담계곡과 태봉대교 어느 쪽을 택해도 무방하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459_O2.jpg.webp)
![강원도 철원 순담계곡 초입의 풍경.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한탄강의 주상절리를 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한탄강 물윗길은 순담계곡과 태봉대교 어느 쪽을 택해도 무방하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459_O2.jpg.webp)
강원도 철원 순담계곡 초입의 풍경.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한탄강의 주상절리를 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한탄강 물윗길은 순담계곡과 태봉대교 어느 쪽을 택해도 무방하다.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강원도 철원에 있습니다. 내륙 깊은 분지라 겨울 추위가 매섭습니다. 산지의 찬 공기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평지로 흘러내립니다. 해발고도가 낮을수록 추워지는 기온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지요. 그런 이유로 이곳의 여름은 ‘밤이 되어도 화기火氣가 가시지 않’겠습니다. 박준 시인은 시 ‘메밀국수’를 쓴 그해 더운 여름을 철원에서 보냈나 봅니다. 이 시에는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편지처럼 읽힙니다. 아니 시처럼 쓴 편지입니다.
‘분지의 여름밤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시인이 첫인사를 건넵니다. 그러고는 여름밤 더위를 피해 밥 대신 메밀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동송의 30년 된 막국숫집과 갈말의 60년 된 막국숫집을 두고 그 시차를 생각하다 혼자 즐거워하기도 하고요. 또 막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길, 철원 사람들은 시인에게 자꾸 저녁 안부를 묻습니다. 밥은 먹었는지, 저녁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든지. 그가 그린 귀갓길은 ‘철(鐵)’원이란 글자의 차가운 이미지를 따뜻하게 녹여 냅니다.
저는 지금 막국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박준 시인의 시 한 편에 끌려 이곳에 왔습니다. 늦은 점심이라 군침이 넘어갑니다. 철원에는 막국수 맛집이 여럿입니다. 철원막국수, 내대막국수, 풍전면옥 등이 소문났지요. 시인처럼 동송과 갈말을 두고 고민하다 갈말로 왔습니다. 동송의 30년 된 막국숫집이 몇 해 전 문을 닫은 탓이기도 하고요. 60년 넘은 갈말의 노포는 네모난 마당을 가진 옛집입니다. 다른 계절에는 마당과 입구에 크고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하죠. 막국수를 먹으며 하얀 메밀꽃이 이는 장면을 떠올린 기억이 납니다. 꽃에 기울인 정성이 메밀면인들 다를까요. 그런 까닭으로 이곳의 주인장은 막국수라는 단어가 못내 섭섭할지 모르겠습니다.
![한탄강 물윗길의 고석정. 고석(孤石)은 한탄강에 홀로 솟은 커다란 바위라는 뜻으로 고석정은 정자와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521_O2.jpg.webp)
![한탄강 물윗길의 고석정. 고석(孤石)은 한탄강에 홀로 솟은 커다란 바위라는 뜻으로 고석정은 정자와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521_O2.jpg.webp)
한탄강 물윗길의 고석정. 고석(孤石)은 한탄강에 홀로 솟은 커다란 바위라는 뜻으로 고석정은 정자와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다.
●메밀·배추의 시차, 한겨울 막국수의 맛
메밀과 배추의 시차 막국수는 메밀국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지요. 어원에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막 만들어 냈다 해 그리 부른다는 설도 있지요. 이때 막은 ‘마구’와 ‘금방’의 의미가 있어요. 아무렇게 금방 만들어 먹는 국수라고 할까요. 그런 음식이 30년, 60년씩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마구 만든다고 불러도 시차는 거짓이 없습니다. 먹음직스러운 비빔막국수 한 그릇이 식탁 위에 놓입니다. 육수만 담은 양은그릇 하나도 무심히 건네집니다. 비빔과 물을 두고 갈등하던 제 말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시인에게 저녁을 먹었냐 묻던 그해 여름 철원 사람들의 모습이 겹칩니다.
![철원막국수는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 외에 편육과 녹두빈대떡 등을 낸다. 겨울에는 온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544_O2.jpg.webp)
![철원막국수는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 외에 편육과 녹두빈대떡 등을 낸다. 겨울에는 온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544_O2.jpg.webp)
철원막국수는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 외에 편육과 녹두빈대떡 등을 낸다. 겨울에는 온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막국수의 제철은 역시 겨울입니다. 먹을 것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가을 메밀을 수확해 겨울에 국수로 빚어 먹었지요. 이곳의 메밀면은 통메밀과 속메밀을 섞어 거뭇한데 그럼에도 면이 푸석하지 않습니다. 한입 덜어 씹으니 메밀 특유의 식감이 입안에서 헤엄칩니다. 과일로 단맛을 낸 양념장은 매운맛이 불편하지 않아 좋습니다. 겨울 한기가 매콤하게 잊힙니다.
박준 시인은 ‘메밀국수’의 말미에 배추 파종 이야기를 꺼냅니다. 겨울에는 그 배추로 만두소를 만들 것이라 말하지요. 갈말에서 막국수를 드셨다면 동송에서 만두를 맛봐도 좋겠습니다. 동송에는 이북 만두를 맛있게 내는 어랑손만두국과 손만두버섯전골을 잘하는 솔향기가 있습니다. 어랑은 함경도 도시의 지명입니다. 배추가 씩씩하게 씹히지 않아도 맑은 탕을 떠올리게 하는 국물이 좋습니다. 솔향기는 전골에 끓인 김치만두가 맛있지요. 만두피는 옥수숫가루를 넣어 노란색이고요. 시인은 겨울 만두까지는 맛보지 못하고 철원을 떠난 듯합니다. 대신 ‘요즘은 먼 시간을 헤아리고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편지를 갈무리합니다.
![한탄대교와 승일교 모습. 한탄대교가 생겨나며 승일교는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인도교가 됐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604_O2.jpg.webp)
![한탄대교와 승일교 모습. 한탄대교가 생겨나며 승일교는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인도교가 됐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604_O2.jpg.webp)
한탄대교와 승일교 모습. 한탄대교가 생겨나며 승일교는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인도교가 됐다.
●꽁꽁 언 겨울에만 걷는 ‘한탄강 물윗길’
언 강 위를 걷는 물윗길 철원에는 ‘먼 시간을 헤아려 생각해 보기 좋은’ 여행지가 있습니다. 한탄강 물윗길입니다. 철원과 경기도 연천, 포천에 걸쳐 흐르는 한탄강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입니다. 철원용암대지는 약 54~12만년 전 여러 차례 화산 폭발로 생겨났고요. 까마득한 시간이 타임랩스처럼 흐릅니다. 하지만 물윗길을 완주하는 데는 3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저는 수십만년과 3시간의 시차를 생각하다 시인처럼 혼자 피식 웃고 맙니다.
한탄강 물윗길은 일 년 내내 개방하지는 않습니다. 10월부터 3월까지만 열립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겨울을 고집해요. 강 한가운데 부교를 놓아 만든 물 위 구간 때문일 겁니다. 저는 순담계곡 쪽에서 출발합니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드르니까지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따라 걸었을 테지요. 절벽에 기댄 잔도의 짜릿함을 누리면서요.
하지만 겨울은 강변의 물윗길을 향합니다. 곧장 협곡 사이 부교가 펼쳐집니다. 첫발을 디디자 아득함 속 아늑함으로 인해 안도합니다. 켜켜이 쌓인 좌우의 지층은 세월의 주름처럼 우리를 안위하지요. 부교는 플라스틱 부표들이 모여 다리 길을 만듭니다. 주상절리와 현무암 계곡 사이로 퉁퉁대는 울림을 딛고 나아가죠. 발끝이 닿는 부교 곁에는 ‘얼음’하고 굳은 강입니다. 마치 작은 기적이 일어난 듯 고요히 멈춰 선 시간입니다.
![층층이 새겨진 지질과 한탄강의 장구한 역사는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조언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627_O2.jpg.webp)
![층층이 새겨진 지질과 한탄강의 장구한 역사는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조언이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627_O2.jpg.webp)
층층이 새겨진 지질과 한탄강의 장구한 역사는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송대소, 높이 30~40m 주상절리 명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면 고석정까지 걸으세요.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여도 한 시간이면 족하지요. 고석정은 높이 약 15m의 외로운 바위와 정자를 이릅니다. 임꺽정이 은신한 곳으로 알려졌지만 화강암층과 현무암층이 마주하는 지질이 흥미롭습니다. 고석정을 지나 조금 더 걷겠다면 승일교가 다음 목적지입니다. 6·25전쟁 전에 북한이 절반을, 전쟁의 끝 무렵에 미군과 노무단이 나머지 절반을 지어 완성한 다리입니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두 글자를 딴 콘크리트 아치교는 왠지 악수하는 다리 같아 뭉클합니다. 부교 구간의 아름다움은 마당바위 지나 은하수교~태동대교 구간도 뒤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은하수교 위에서 송대소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어요. 송대소는 물윗길 주상절리 명소입니다. 높이가 30~40m에 이르러요. 다각형의 기둥은 절벽에 기대 기이한 형성을 연출해 시선을 끕니다. 물론 물윗길을 걸을 때는 은하수교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거대한 스케일을 선보입니다. 한탄강의 진짜 주인공은 그들이고 우리는 그저 그 물길을 빌려 잠시 다녀갈 뿐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주말과 공휴일엔 태봉대교 매표소에서 순담계곡 매표소까지 셔틀버스가 오갑니다. 은하수교와 고속정 등을 경유하지요. 참, 물윗길을 걸을 때는 물이나 따뜻한 음료를 꼭 챙겨 가길 권해요.
![강원도 철원역사문화공원 초입에 위치한 옛 북한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 건물. 1946년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지어진 러시아식 건물이다. 약 2년의 보수 과정을 거쳐 2024년 11월 재개장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648_O2.jpg.webp)
![강원도 철원역사문화공원 초입에 위치한 옛 북한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 건물. 1946년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지어진 러시아식 건물이다. 약 2년의 보수 과정을 거쳐 2024년 11월 재개장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648_O2.jpg.webp)
강원도 철원역사문화공원 초입에 위치한 옛 북한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 건물. 1946년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지어진 러시아식 건물이다. 약 2년의 보수 과정을 거쳐 2024년 11월 재개장했다.
●소설가 이태준의 편지 쓰는 법
철원의 편지는 박준 시인 이전에 소설가 이태준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그는 ‘한국의 체호프’라 불린 철원 태생의 작가입니다. ‘운문은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서울 수연산방이 그의 집터입니다. 1933년부터 머물며 정지용, 이효석, 이상 등과 구인회 활동을 한 곳이고요. 그는 1943년 다시 철원으로 돌아와 몇 해를 삽니다. ‘서간문강화’(깊은샘)는 그때쯤 출간한 책입니다. 편지 쓰는 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여행 중에 흔히 쓸 편지들’이란 장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는 ‘여행맛을 여러 사람에 보이는 미덕’이라며 ‘감흥이 솟는 만치는 표현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이라고 덧붙입니다.
![소이산 모노레일은 약 1.8㎞ 구간으로 편도 10분 정도 걸린다. 하차 후 5~10분 걸어가면 소이산 전망대가 나온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709_O2.jpg.webp)
![소이산 모노레일은 약 1.8㎞ 구간으로 편도 10분 정도 걸린다. 하차 후 5~10분 걸어가면 소이산 전망대가 나온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709_O2.jpg.webp)
소이산 모노레일은 약 1.8㎞ 구간으로 편도 10분 정도 걸린다. 하차 후 5~10분 걸어가면 소이산 전망대가 나온다.
몇 해 전만 해도 그의 소설 ‘촌띄기’를 따라 걷는 촌뜨기길이 철원에 있었지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철원읍 관전리 철원경찰서(터) 등을 엮은 길이었습니다. 옛 철원경찰서는 노동당사 옆입니다. 그의 고향마을 용담이 멀지 않아요. 지금은 소이산 옆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촌뜨기길의 아쉬움을 달랩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1930년대 옛 철원읍 시가지를 재현한 공원입니다. 철원금융조합, 철원공립보통학교, 관동여관, 철원극장, 철원역 등이 도열합니다. 김남길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도적: 칼의 소리’를 촬영하기도 했다지요. 철원양장점에서는 옛 옷을 입고 무료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철원극장에서는 주말 무성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요. 철원역에서는 모노레일을 타고 소이산 전망대까지 다녀올 수 있습니다.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은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DMZ)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점점이 사라진 옛 철원 시가지의 흔적이 그곳에 있겠지요. 서울과 원산을 잇던 경원선도, 금강산을 향하던 철길도 그곳에 있었겠지요.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 터도, 6·25전쟁에서 산화한 백마고지의 선령들도 그곳에 잠들었겠습니다.
![철원우체국 내에는 보관용 엽서를 묶은 ‘느린 우편’ 책이 있어 철원을 다녀간 이들이 쓴 엽서를 책처럼 읽어 볼 수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729_O2.jpg.webp)
![철원우체국 내에는 보관용 엽서를 묶은 ‘느린 우편’ 책이 있어 철원을 다녀간 이들이 쓴 엽서를 책처럼 읽어 볼 수 있다.](https://img.seoul.co.kr//img/upload/2025/01/30/SSC_20250130235729_O2.jpg.webp)
철원우체국 내에는 보관용 엽서를 묶은 ‘느린 우편’ 책이 있어 철원을 다녀간 이들이 쓴 엽서를 책처럼 읽어 볼 수 있다.
●느린 편지에 담긴 겨울의 철원
철원군은 6·25전쟁을 거치며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보통 군의 지명은 제일 큰 읍의 지명을 따르지만 철원읍은 민통선 안에 있지요. 그래서 철원군은 동송읍과 갈말읍이 제일 큽니다. 박준 시인이 동송과 갈말 사이 막국숫집을 두고 고민한 것도 그런 연유겠습니다. 아직은 갈 수 없는 먼 북녘의 겨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소이산을 내려옵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을 떠나기 전에는 옛 철원우체국을 발견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옛 집배원 제복과 우편배달용 빨강 자전거와 그 시절 누군가 썼던 엽서가 눈길을 끕니다. 우체국에 왔으니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우편 접수대 앞에는 발송용 엽서와 보관용 엽서가 보입니다. 발송용 엽서는 3개월 후 수신인에게 보내고, 보관용 엽서는 철원우체국이 보관했다 일부를 선정해 ‘느린 우편’ 책자로 제작한다네요.
발송용 엽서를 받아서는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에 답장합니다. 여름에 쓴 철원의 편지(시)를 받고 겨울에 쓰는 편지겠습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다 그의 고향이라서 이태준의 ‘무서록’(청색종이)을 떠올립니다. ‘두서없이 쓴 글’이라는 제목이 좋기도 하고요. 그 가운데 ‘매화’의 한 문장을 빌립니다.
‘겨울이 차다는 것은 우리의 체온이 너무 뜨거운 때문’
이 편지가 다다를 때쯤은 봄일 테고, 그때의 저는 또 겨울의 철원을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25-01-31 2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