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으로 아내잃은 가장, 헛개로 절망 극복

태풍으로 아내잃은 가장, 헛개로 절망 극복

입력 2012-04-23 00:00
수정 2012-04-2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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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페이가 몰아치던 17년 전 전남 여수 오동도 승합차 추락참사로 부인을 잃은 50대가 수년의 방황을 국산차 연구로 극복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모춘섭(53)씨는 1995년 7월23일 태풍이 여수 앞바다를 삼키기 직전까지만 해도 오동도에서 횟집을 경영하는 아내와 7살과 3살배기 두아들의 아빠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오동도에 있던 15명의 횟집 종사자들과 승합차를 함께 타고 태풍을 피하려던 아내가 섬을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다리에서 자동차와 함께 높은 파도에 휩쓸렸다.

당시36세의 창창한 나이였던 모씨는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뒤 방황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목숨을 버리려고도 했지만 어린 아들이 눈에 밟혀 실행해보지도 못하고 수년째 전국을 떠돌았다.

아내 몫으로 나온 1억 남짓한 보상금은 합천 해인사와 구례 화엄사에 내놓고 명복을 빌었으며 이를 계기로 해인사 명진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불자가 되려고도 했었다.

의지 하던 명진 스님이 2001년 열반에 들자 그의 방황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까지 섞이면서 스스로 한 끼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헤매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던 중 2002년 산골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헛개나뭇잎이 그의 인생 후반부를 바꿔 놓았다.

배가 고파 따먹었던 헛개잎의 향기를 오래토록 잊지 못하면서 헛개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고, 우선 헛개를 통한 국산침출차 제조를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자연산이든 재배지든 헛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 8년여의 노력 끝에 지난2010년 4월 특허청장으로부터 ‘헛개차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를 따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모씨는 봄이 지나 차를 만들지 못하는 시기에는 공사장에서 품을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미래와산림을 경영하는 김기석(48)사장의 지원과 도움은 큰 힘이 됐다.

모씨는 특허대로 전통침출차 형태의 헛개차를 생산해 반응을 살폈지만, 외제차가 자리 잡고 있던 있던 벽이 만만치 않았다.

전통찻집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간단한 시음행사를 갖기도 해보고 조금씩 나눠줘 보기도 했지만 되돌아온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변변한 차동차도 개인작업실도 없이 발품을 팔고 다니며 차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아내의 죽음뒤 찾아온 절망감을 극복하고 헛개를 만난 이후 생긴 희망은 지금도 그의 열정을 부추기고 있다.

모씨는 “아내를 잃고 죽으려고까지 했지만 헛개를 만난 뒤 인생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며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수입되는 차와 커피의 확산으로 사라진 국산차를 개발해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꿈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껏 정성들인 헛개차가 세상에 나가 인정받을 수 만 있다면 저와 아이들이 끔찍한 사고로 가족을 잃고 고통 받은 시간이 충분한 가치로 인정받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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