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side] ‘응급실 전문의 당직’ 일주일…병원간 온도차

[Weekend inside] ‘응급실 전문의 당직’ 일주일…병원간 온도차

입력 2012-08-11 00:00
수정 2012-08-11 00:13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전문의 부족한 중소병원들 ‘응급의료기관’ 포기 잇따라

지난 9일 밤 10시 인천의 A종합병원 응급실. 10개 남짓한 병상이 환자들로 가득 찼다. 팔을 다친 중학생 소년은 의사가 팔을 주무르자 아프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다급한 얼굴로 응급실을 찾은 할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링거를 꽂자 편안한 표정이 됐다.

“입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불안한데….” 젊은 부부가 열이 나 불덩이가 된 아기를 달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물었다. “장염 소견이 있네요. 입원수속을 밟아 드리겠습니다.”

응급실 당직의사 2명, 간호사 5~6명이 분주히 오가며 환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 병원은 지난 5일 시행된 개정 응급의료법에 따라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를 실시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이 24시간 응급실에 머물며 환자를 진료하고, 필요에 따라 각 과의 의사(당직 전문의)를 호출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제도 시행 닷새가 지나도록 아직 전문의를 호출하는 ‘온콜’(On-call·비상호출)이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이미지 확대
환자와 보호자들은 바뀐 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취재를 하면서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에 대해 알려주자 “그런 게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새 제도를 한목소리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팔을 다친 딸을 데리고 온 김모(41)씨는 “각 과의 전문의에게 신속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최모(35·여)씨 역시 “전문의가 제때 병원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환자로서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비해 병원 측은 ‘딱히 달라진 건 없다.’는 반응이다. 병원 관계자는 “기존에도 응급실 당직의가 초진을 하고 과별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 호출해 전화로 지시를 받거나 직접 진료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제도 시행 이전의 경우 하루 100~200명의 환자가 응급실을 찾는 가운데 전문의 비상호출로 이어졌던 사례는 5% 정도였다고 한다.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전문의가 호출을 받는 건수가 갑자기 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병원 측 판단이다. 또 전문의들 대다수가 병원과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기 때문에 1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하기도 어렵지 않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이 병원의 경우 규모는 큰 편이지만 진료과목이 세분화돼 있어 전문의가 1~2명에 불과한 과가 적지 않다. 실제로 응급실에 게시된 2주일 분량의 당직 전문의 명단에는 안과, 피부과 등 10여개 과에서 한 명의 이름만 올라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전문의들이 상시 대기할 것을 제도로 규정하고 과태료 등의 책임을 지우니 의사들이 심적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가 마련된 것은 한 어린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기가 됐다. 2010년 11월 대구에서 장중첩증에 걸린 4세 여아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다 숨졌다. 국회는 지난해 6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개정했다.
지난 9일 밤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급하게 후송돼 온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지난 9일 밤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급하게 후송돼 온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바뀐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응급실 근무 의사가 1차로 환자를 진료하고 다른 과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당직 전문의에게 응급환자의 진료를 요청해야 한다.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가 진료하던 단계를 없앴다. 당직 전문의가 반드시 병원 내부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 밖에 있더라도 비상호출을 받고서 병원에 와 진료를 하면 된다.

예전에는 전화로 치료 내용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개정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이런 원격진료는 안 되고 호출을 받은 당직 전문의가 직접 와서 진료해야 한다. 호출을 받은 당직 전문의가 응급실에 오지 않으면 병원은 200만원의 과태료를, 전문의는 15일~2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다.

제도가 시행되면서 지방의 중소 응급의료기관들은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개정 응급의료법에는 응급의료기관에 개설된 모든 진료과목에 당직 전문의를 둬야 하는데 지방의 응급의료기관들은 여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비교적 낫다는 인천 A병원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니 다른 중소 응급의료기관의 사정은 한층 열악할 수밖에 없다. 경남의 한 병원에서는 정형외과 전문의 3명 가운데 2명이 사표를 냈다. “응급실 당직과 외래 진료를 모두 다 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다. 그나마 인력 사정이 나은 병원에서도 특정 과에서 당직 전문의들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원시키는 편법도 등장했다. 입원을 하게 되면 응급의료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꼭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레지던트나 인턴 등이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 응급상황에서의 호출 체계가 갖춰진 대형병원은 전문의 당직제 도입이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수도권의 대형병원들은 법 개정 이전에도 소아청소년과 등 응급환자가 많은 과는 전문의가 당직을 해 왔다. 문제는 이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중소병원들이다. 이 병원들은 전문의에게 전화를 걸어 진료지시를 받거나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형병원으로 환자를 옮기는 식으로 운영해 왔다. 그런데 개정 응급의료법은 이런 곳에서도 전문의를 반드시 상시 대기시켜 긴급상황에 직접 진료하도록 한 것이다.

모든 응급환자가 전문의의 진료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 만큼 실제로 의사들이 밤낮 없이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제도 시행 후 당분간은 병원의 실제적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병원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경기 지역의 한 병원 관계자는 “매일 상시대기를 해야 하는 의사들에 대한 보상체계도 요구될 것이고 인력도 충원해야 할 텐데 그럴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응급실 당직 전문의를 두지 못하는 병원들 사이에서는 응급의료기관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일 개정법 시행 이후 10여곳의 지방 의료기관이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을 반납했다.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되면 국고보조금이 끊긴다. 환자에게 응급의료관리료도 청구하지 못한다.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들이 적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지원까지 포기하고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까지 취소한 것은 당직 전문의를 구하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지역 응급의료센터 지정을 반납한 강원도의 중소병원 관계자는 “과목별로 최소한 5~6명의 전문의가 있어야 당직 전문의를 할 수 있는데 거의 불가능해 지정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역시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 반납을 검토하고 있는 다른 병원 관계자도 “당직 전문의를 하려고 전문의를 충원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의사들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해 정부가 현실에 맞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부에서는 응급실 당직의가 전문의 호출을 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진료하면 그만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면 환자로서는 좋은 진료를 신속하게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다. A병원 관계자는 “모든 병원에 똑같은 비상진료체계를 구축할 게 아니라, 중소병원을 찾은 응급환자가 빠르게 대형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병원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복지부는 3개월 동안을 계도기간으로 정했다. 당장 11월까지 시간을 번 셈이다. 그러나 시행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정 의료법이 정착되면 응급실 내 중증환자 체류시간 및 수술 대기시간 단축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말쯤 응급진료 수가를 현실에 맞게 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아가 내심 사정이 열악한 응급의료기관이 정리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복지부의 2009년 지역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58%는 인력기준을 채우지 못했다.

김효섭·김소라기자 newworld@seoul.co.kr

2012-08-11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전과자의 배달업계 취업제한 시행령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강력범죄자의 배달원 취업을 제한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된 가운데 강도 전과가 있는 한 배달원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속죄하며 살고 있는데 취업까지 제한 시키는 이런 시행령은 과한 ‘낙인’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전과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이런 시행령은 과하다
사용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로 보아야 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