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홍글씨 지운 검찰의 무죄 구형

역사의 주홍글씨 지운 검찰의 무죄 구형

입력 2012-09-13 00:00
수정 2012-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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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옥살이 박형규 목사 “세상이 새로워져”

“법의 이름으로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509호 법정.

검사는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밝히며 엄중히 구형을 할 순서에 차분한 목소리로 준비해온 문구를 읽어 나갔다.

반대편 피고인석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한 개신교계 원로 박형규(89) 목사가 검사를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검사는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하여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날 검찰은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 위반, 내란선동 혐의로 기소됐던 박 목사의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고인에게 이례적으로 무죄를 구형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평가와 반성의 의미가 담긴 장문의 소회까지 밝혔다.

같은날 바로 이어진 선고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김상환 부장판사)는 “피고인과 그를 대변한 변호인, 검사의 판단과 재판부의 판단이 동일하다”며 박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울였을 노력이 이 판결을 가능케 했음을 고백하면서, 부디 판결이 피고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우리 사법에 대한 안도로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박형규 목사는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약 9개월간 복역한 뒤 출소했다.

박 목사는 재판이 끝나고 “세상이 새로워진 것 같아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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