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 단속반 24시 들여다 보니

음란물 단속반 24시 들여다 보니

입력 2012-10-02 00:00
수정 2012-10-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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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사무실. 책상마다 놓인 컴퓨터 모니터 2대에 낯뜨거운 장면들이 가득하다. 한 모니터에서는 벌거벗은 남녀의 성행위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버젓이 재생되고 있다. 다른 모니터에는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그린 만화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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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방통위 유해정보정보심의팀 직원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성인음란물에 대한 체증작업을 하고 있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28일 방통위 유해정보정보심의팀 직원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성인음란물에 대한 체증작업을 하고 있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모니터를 살펴보는 사람들이 동영상과 만화에서 가장 노출이 심하고 노골적인 장면만을 캡처해 또 다른 모니터 화면에 붙여 넣기를 반복한다. 이 와중에 웹하드 사이트에 올라온 자료를 내려받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졌다.

 벌건 대낮에 사무실에서 음란물을 찾아 샅샅이 살펴보는 이들은 다름 아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음란물 전담반 팀원들이다. 음란물뿐만 아니라 폭력·잔혹물, 청소년 유해물, 성매매 광고글 등 각종 유해 정보를 모니터링하는 기존의 유해정보심의팀과 별도로 음란물만을 중점적으로 걸러내기 위해 지난달 17일부터 가동된 별동팀이다.

 이들이 모니터링하는 음란물 유형은 동영상부터 사진, 만화, 애니메이션, 사이트,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음란물의 상당수가 집중돼 있는 웹하드를 중심으로 자료를 내려받아 성기 노출 등 음란물 규정에 저촉되는 장면 등을 캡처해 채증 자료로 만들어 보고서에 첨부한다.

 직원 1인당 심의를 위해 작성하는 보고서 건수는 하루에 약 10~20건 정도다. 그러나 보고서 1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20개 이상의 채증 자료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음란 동영상을 반복적으로 올리는 헤비 업로더 계정 1개에 대한 심의를 하기 위해 20개 이상의 동영상을 살펴보고 문제가 되는 장면을 캡처해야 한다. 직원 1명이 하루에 들여다봐야 하는 음란물이 최소 200개 이상인 셈이다.

 하루 종일 음란물을 들여다봐야 하는 업무라고 하면 ‘남들은 돈 내고 하는 일을 돈 받아 가며 한다.’는 농담 섞인 이야기를 듣지만 직원들이 겪는 고충은 상당하다. 하루 종일 ‘은둔형 외톨이’처럼 각종 음란물을 지켜보느라 눈이 뻘겋게 충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업무상 필요한 일이라 이런 고충을 감내하며 업무에 진력하지만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장면이나 수간 등 극단적 묘사로 가득 찬 음란물을 반복적으로 살펴봐야 할 때는 더 힘들다. 직원 김모(42)씨는 “아동 음란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무덤덤하게 대할 수가 없다.”며 “익숙해진다고 해도 또 그것대로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성을 극단적으로 도구화하는 장면을 접하는 만큼 좋은 음악, 좋은 책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모니터링 대상이 되는 정보들은 신고(1377), 자체 모니터링, 경찰청 등 관계 기관 이첩 등을 통해 접수받는다. 인력의 한계 등으로 자체 모니터링이나 관계 기관 이첩보다 신고를 통한 접수에 좀 더 의존하고 있다. 올 9월 말까지 심의에 올라간 음란·선정성 정보 8431건 중 신고를 통한 접수가 5413건으로 약 64%를 차지했다.

 신고 건수는 음란물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평소 월 1000건 안팎이던 음란·선정성 정보 신고 건수가 최근 발생한 각종 성범죄 사건으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7월 3089건, 8월 5735건으로 폭증했다.

 신고 건수가 늘면서 야근도 일상사가 됐다. 음란물 전담반 팀원은 현재 5명. 기존 유해정보심의팀의 직원과 모니터링 요원을 더해도 20명이 고작이다. 폭증하는 신고 민원을 처리하느라 밤 9시까지 야근하기가 일쑤다.

 끊임없는 시정 요구로 사이버 환경 정화에 나서지만 무기력증을 느끼기도 한다. 인터넷 속도와 공유 기술의 발달로 일반인들의 음란물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 데다 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음란물의 양이 사실상 무한에 가깝게 늘어나고만 있어서다. 음란물 전담반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 음란물(성매매 정보 포함) 시정 요구 건수는 2009년 5057건, 2010년 8712건, 2011년 9343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도 8월 말까지 5740건을 기록했다.

 유해정보심의팀과 음란물 전담반을 이끌고 있는 정희영 팀장은 이러한 현실을 ‘폭설에 눈 치우기’ 또는 ‘해일 덮친 곳에서 물 퍼내기’로 비유했다. 그러나 막상 강력 성범죄가 터지고 음란물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 ‘음란물 유통을 왜 제대로 막지 못하느냐’는 비판이 이들에게 쏟아지곤 한다.

 어쩌면 달걀로 바위 치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직원들은 그럴수록 음란물 단속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음란물 전담반 직원 박모(37)씨는 “우리마저 손을 놓으면 음란물이 더욱 무분별하게 유통될 것”이라며 “수많은 시정 요구를 통해 일부 웹하드 사이트가 자체적인 정화 노력을 보이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음란물 전담반원들은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실마리는 음란물의 불법성과 폐해를 성인들이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아이들만 못 보게 하면 되지 왜 성인인 내가 보는 것까지 삭제하느냐.”는 항의 전화를 직원 1인당 하루에 5건 이상씩 받는다.”면서 “그러나 음란물 유통은 미성년자 여부를 떠나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상 최고 징역 1년에 처해질 수 있는 엄연한 불법 행위”라고 강조한다.

 정 팀장은 “끝없이 복제되고 순식간에 퍼지는 음란물 유통 현실에 비춰 볼 때 단속은 어떤 측면에서 음란물의 불법성을 나타내는 상징에 불과할 수도 있다.”며 “교육과 홍보를 통해 이용자에게 음란물의 불법성과 악영향을 인식시켜 음란물 수요 자체를 줄여 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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