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노예계약’ 법정공방…법원 “10년전속 부당”

연예인 ‘노예계약’ 법정공방…법원 “10년전속 부당”

입력 2012-12-22 00:00
수정 2012-12-2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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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女탤런트, 기획사와 1년 가까이 고독한 싸움

최근까지 지상파 드라마와 케이블 시트콤에 출연해온 20대 여성 탤런트 A씨.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며 경력을 쌓아가야 할 시기에 그녀는 1년이 다 되도록 법정 다툼에 얽매여 있다.

5년 전 기획사와 맺은 전속 계약이 문제였다.

A씨는 자신에게 현저히 불리한 계약이 버거워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지난 여름 완전 승소했다.

하지만 기획사 측의 거듭된 이의 신청과 상소에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가처분 결정문에 일부 공개된 A씨와 소속사인 B사 간 계약서를 뜯어보면 충격적이다.

‘노예계약’을 방불케 하는 독소조항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B사는 A씨의 전속 계약기간을 ‘방송 활동을 시작한 이후 10년’으로 정했다.

체결 시점부터로 하는 통상 계약과 분명히 차이가 있다. 젊은 탤런트에게는 사실상 종신 계약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 연예 활동을 쉬면 그만큼 계약 기간에 넣지 않기로 했다.

약속한 계약금은 8천만원이지만 데뷔 전 성형수술비, 교육비 등은 여기서 제하기로 했다.

애초 반씩 나누기로 한 수입도 차량 대여비, 기름값, 옷값, 화장비용 등을 빼고 계산하기로 추가 합의했다.

계약을 어기면 계약금을 포함해 B사가 그동안 투자한 직·간접 비용의 3배를 청구일로부터 보름 안에 토해내야 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결국 A씨는 지난 3월 B사 대표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성낙송 수석부장판사)는 A씨 손을 들어줬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은 직업의 자유, 인격권,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으로 민법 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계약의 유·무효를 논하기 앞서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져 정상적인 전속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B사가 A씨에게 원치 않는 연예활동을 강요하거나 제3자와의 관계에 간섭할 경우 한 건당 50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명했다.

B사 대표가 곧바로 이의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같은 결론을 내고 기존 가처분 결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 사건은 기획사 측 항고로 서울고법에서 첫 심문을 앞두고 있다. 본안 소송도 별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2010년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한 멤버가 전 소속사를 상대로 낸 비슷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계약기간 10년, 계약 위반시 투자액 3배 배상 등으로 ‘노예계약’ 논란이 일었던 사건이다.

한 변호사는 “모범거래 기준이 있지만 기획사와 연예인 지망생의 불평등한 계약이 여전하다”며 “악어같은 기획사에 발목 잡힐 수밖에 없는 관행에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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