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바람이 앙칼졌지만 그래도 봄기운으로 포근했던 5일 오후 안양시립 청계공원묘지.
혜진이가 가장 좋아했던 케이크를 사들고 숱하게 오르던 길이지만 유족들에겐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사랑하는 가족 한 명 더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6년여전 끔찍한 유괴범에 금쪽같은 딸을 잃고 악몽이 떠오르면 술로 시름을 달래온 ‘혜진아빠’ 고(故) 이창근(53)씨가 지난 3일 심장마비로 숨져 화장돼 딸 곁에 묻혔다.
가족들은 이씨를 혜진이 옆에 묻어 아빠와 딸이 함께 있도록 했다.
경기도 수원 영통구 하동 연화장에서 화장을 마친 유족 10여명은 오후 2시 15분께 의왕시 청계동 공원묘지 고갯길을 유골함과 영정사진을 들고 올랐다.
이씨는 사진에서만큼은 슬픔을 잊은 듯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유골함은 혜진이가 묻힌 자리에서 바로 왼쪽 세번째 자리에 놓여졌다.
혜진이와 합장하려 했지만 한 곳에 이중으로 유골함을 봉안할 수 없다는 공원묘지 운영규정 때문에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족과 친척들이 차례로 절을 하며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빈소에서 담담하게 슬픔을 삼키던 유족들은 맑게 갠 하늘이 오히려 서러웠는지 연신 눈물을 훔쳤다.
대학 캠퍼스에서 젊음을 만끽해야 할 직업 전선에 뛰어든 혜진이 오빠(24)와 언니(22) 역시 그간 애써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서럽게 울었다.
부인 이달순(49)씨는 고인과 작별한 뒤 혜진이 묘 앞에서 한참을 서서 딸을 내려다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는 엄마의 따스함이 묻어났다.
오빠는 안장절차가 끝나고 유족들이 모두 산을 내려간 뒤에도 한참을 아버지와 동생이 묻힌 자리를 바라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젠 가장이라는 무게까지 짊어지게 된 20대인 그에게 이날 아버지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진 것 같아 보였다.
한 유족은 “딸 때문에 그렇게 가슴 아파하더니. 그래도 이제 딸 옆에 있게 돼 (애 아빠) 마음이 한결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들릴듯 말듯 말했다.
연합뉴스
혜진이가 가장 좋아했던 케이크를 사들고 숱하게 오르던 길이지만 유족들에겐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사랑하는 가족 한 명 더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6년여전 끔찍한 유괴범에 금쪽같은 딸을 잃고 악몽이 떠오르면 술로 시름을 달래온 ‘혜진아빠’ 고(故) 이창근(53)씨가 지난 3일 심장마비로 숨져 화장돼 딸 곁에 묻혔다.
가족들은 이씨를 혜진이 옆에 묻어 아빠와 딸이 함께 있도록 했다.
경기도 수원 영통구 하동 연화장에서 화장을 마친 유족 10여명은 오후 2시 15분께 의왕시 청계동 공원묘지 고갯길을 유골함과 영정사진을 들고 올랐다.
이씨는 사진에서만큼은 슬픔을 잊은 듯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유골함은 혜진이가 묻힌 자리에서 바로 왼쪽 세번째 자리에 놓여졌다.
혜진이와 합장하려 했지만 한 곳에 이중으로 유골함을 봉안할 수 없다는 공원묘지 운영규정 때문에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족과 친척들이 차례로 절을 하며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빈소에서 담담하게 슬픔을 삼키던 유족들은 맑게 갠 하늘이 오히려 서러웠는지 연신 눈물을 훔쳤다.
대학 캠퍼스에서 젊음을 만끽해야 할 직업 전선에 뛰어든 혜진이 오빠(24)와 언니(22) 역시 그간 애써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서럽게 울었다.
부인 이달순(49)씨는 고인과 작별한 뒤 혜진이 묘 앞에서 한참을 서서 딸을 내려다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는 엄마의 따스함이 묻어났다.
오빠는 안장절차가 끝나고 유족들이 모두 산을 내려간 뒤에도 한참을 아버지와 동생이 묻힌 자리를 바라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젠 가장이라는 무게까지 짊어지게 된 20대인 그에게 이날 아버지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진 것 같아 보였다.
한 유족은 “딸 때문에 그렇게 가슴 아파하더니. 그래도 이제 딸 옆에 있게 돼 (애 아빠) 마음이 한결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들릴듯 말듯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