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선배님들 편히 눈감으세요”…경찰 유해 발굴 현장

<르포> “선배님들 편히 눈감으세요”…경찰 유해 발굴 현장

입력 2014-08-21 00:00
수정 2014-08-2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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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경찰, 익산 강둑서 한국전때 사망한 경찰관 유해 7구 발굴

21일 오전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황산대교 아래 금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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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 유해 발굴하는 전북경찰
전사자 유해 발굴하는 전북경찰 전북경찰청 과학수사대(CSI) 직원들이 21일 전북 망성면 화산리 황산대교 아래 금강변에서 한국전쟁 당시 숨진 선배 경찰관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이곳은 1950년 7월 충남 강경경찰서 경찰관 170여명이 북한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시 이 전투에서 경찰관 60∼80명이 전사했다.
연합뉴스
충남 논산시 강경읍과 맞닿은 이곳은 1950년 7월 충남 강경경찰서 경찰관 170여명이 북한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 전투에서 경찰관 60∼80명이 전사했다.

익산경찰서와 전북경찰청 과학수사대(CSI) 직원들이 60년이 넘도록 펄 속에 묻혀 있던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평범해 보이는 이 강둑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익산에서 경찰 피해가 가장 컸다는 증언이 이어져 왔다.

황산대교 아래로 내려가자 드넓은 펄이 눈에 들어왔다.

마스크와 장갑을 낀 경찰관들이 붓을 들고 조심스럽게 두개골을 덮은 펄을 걷어냈다.

이들은 조심스럽게 땀을 닦아냈다. 이들은 무작정 펄을 뒤집지 않는다. 면적을 한정해 유해가 나올 때까지 골고루 판다.

유해가 발견되면 그곳을 중심으로 조금씩 주변을 넓혀간다. 유해를 찾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나올 때까지 호미질의 무한 반복이다.

60여 년간 쌓인 펄, 산산이 부서진 유해, 구천을 떠도는 넋…. 유일한 답은 기다림뿐이었다.

천 위에는 앞서 이곳에서 발굴된 가슴뼈와 두개골 등 유골 10여점이 각각의 위치에 맞게 놓여 있다.

그 옆에는 녹슨 탄피, 경찰 허리띠 버클 등이 가지런히 줄 서 있다.

주변에서는 전석종 전북지방경찰청장과 강황수 익산경찰서장, 선원 익산서 형사과장 등이 직원들이 놀리는 붓과 모종삽의 움직임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선원 과장은 “숨진 지 60년이 훌쩍 넘었지만 유골이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며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강경을 점령한 북한군이 이곳을 지나치면서 무력 저항을 한 경찰과 민간인을 사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일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두개골을 또 발견했다. 이렇게 발견한 유해는 모두 7구.

유해가 계속 발굴되자 경찰관들은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발견된 유골은 DNA 조사를 거쳐 유족에게 인계될 예정이다.

전북경찰청은 이 일대에 40여명으로 구성된 발굴단을 투입, 80여점의 뼈와 탄피, 탄두, 무궁화 무늬가 있는 허리띠 버클 등의 유품을 발굴했다.

이날 오전 일찍부터 시작된 고된 유해발굴작업으로 경찰관들의 얼굴과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이들의 가슴은 60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한 억울한 선배 경찰의 넋을 위로한다는 뿌듯함으로 벅차올랐다.

현철호 전북경찰청 과학수사대 검시관은 “선배께서 묻혀 있다고 생각하면서 소중하고 정성을 다해 펄을 쓸어냈다”며 “끝까지 유해를 수습해 억울하게 돌아가신 선배들의 넋을 위로하겠다”고 말했다.

전석종 전북경찰청장은 “뼈 한 점이라도 유실되지 않도록 겸손한 마음으로 유해 발굴에 임해 달라”면서 직원들을 격려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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