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병장 호적 첫 확인…선양사업 진전 기대

항일의병장 호적 첫 확인…선양사업 진전 기대

입력 2015-01-29 15:29
수정 2015-01-2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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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단성호적대장’에 나이·가족관계·신분 등 기록

한말 을사늑약 이후 영·호남 항일의병장의 나이와 신분 등을 기록한 호적이 처음으로 나왔다.

경남 하동문화원 정재상 향토사연구위원장은 산청 출신 박동의(1867~1908) 의병장의 호적을 ‘을유식(乙酉式 1885년) 단성호적대장’에서 광복 70년 만에 확인했다”라고 29일 밝혔다.

단성호적대장에는 박동의(동언)의병장은 밀양 박씨로 단성현 도산면(현 산청군 신안면) 진태마을 출신으로 1885년 당시 19세로 정묘생(1867년)으로 기록됐다고 정 위원장은 소개했다.

부(父)는 박정식 병자생(1816년) 70세이고 모(母)는 석(石)씨이며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 있다.

조부는 박상진, 증조부는 박치원, 고조부는 박계중이며 부인은 성주 이(李)씨로 병인생(1866년) 20세 등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박동의 의병장은 1908년 2월 일본군 수비대의 지리산 토벌작전이 이루어지자 지리산을 중심으로 의병을 지휘, 유격전을 펼치며 항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08년 10월 산청 덕산에서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숨졌다.

그에게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정 위원장은 “지금까지 발굴한 의병장과 의병 등은 대부분 호적이 없어 정확한 나이와 가족관계를 몰랐고 신분 역시 알 수 없어 연구에 어려움을 겪었다”라며 “이 호적 덕분에 독립운동가 연구와 선양사업에 큰 진전을 보게 됐다”라고 기대했다.

단성호적대장은 38책으로 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됐다.

조선시대에는 3년마다 군·현 단위로 호구를 조사해 호적을 만들었다.

박동의 의병장 호적은 광제(청나라 연호) 11년(1885년) 만든 단성호적대장에 기록돼 있다.

현재 일본 도쿄의 가쿠슈인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으며 1980년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영인 출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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