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기념’ 반출 관행 여전한데 관리 허술…적발돼도 벌금형 그쳐
군부대에서 실탄이나 총기 부품을 반출했다가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적발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군(軍)의 허술한 총기·실탄 관리 실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군 전역자들 사이에 암암리에 행해진 ‘기념 실탄’ 챙기기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총기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에는 군 전역자들이 제대 기념으로 실탄을 챙겨 나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빼내온 실탄을 내보이며 군 복무 무용담을 장황하게 늘어 놓곤 했다.
전역병들이 챙겨온 실탄을 일종의 현역 복무 ‘인증품’쯤으로 여겨 문제 삼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있었다.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는 과거 군 복무 시절 사격을 마치고 남은 탄피 일부를 빼돌려 여자친구에게 주거나 전역기념 반지를 제작했다는 내용의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탄피를 반출하는 것도 문제지만 심지어 제대하면서 실탄을 빼돌려 챙기는 전역병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항공기에 탑승하려다가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잇따라 적발된 승객들 역시 현역 복무시절 실탄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2일 청주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실탄 소지 혐의(총포도검화약류 안전관리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된 A(21)씨는 강원도 모 부대에서 GOP 관측병으로 복무하다 지난 15일 제대했다.
A씨는 대전에 사는 누나 집에서 일주일간 지낸 뒤 제주도에 사는 부모에게 가면서 전역하며 들고나온 실탄을 소지했다가 붙잡혔다.
조사 결과 그가 소지했던 것은 M60 실탄이었다. 그는 군 복무시절인 지난해 5∼8월 사이에 이 실탄을 챙겼다고 진술했다.
A씨는 경찰에서 “파견 근무를 나갔다가 북방한계선(GOP) 인근 소초(GP)장 숲속에 떨어져 있던 실탄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당시 발견한 실탄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자신의 휴가 전용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 숨겨뒀다 제대하면서 갖고 나왔다고 했다.
지난 2월 26일에는 청주공항을 출발해 제주로 들어오려던 김모(37)씨의 가방에서 38구경 권총 실탄 1발이 제주공항 보안검색 과정에서 적발돼 김씨가 총포도검화약류 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김씨는 과거 의경으로 복무할 때 이 실탄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전역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보관해오다가 이날 가방에 넣은 채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5일에는 청주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나가려던 현역 육군 부사관 B씨의 가방에 K2 소총과 M16 소총의 공이와 K2 소총 가스조절기가 들어있는 것이 보안검색 과정에서 적발됐다.
2012년 1월에는 전주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의경이 사격 훈련을 하면서 챙긴 38구경 실탄 1발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 의경의 여자친구가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려다가 군산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적발되면서 뒤늦게 실탄 반출이 들통났다.
당시 경찰은 실탄을 분실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이런 사실을 파악조차 하지 못해 허술한 총기류 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보다 한 해 전인 2011년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군 복무를 마친 민간인이 제대기념으로 미군경비대 소유 실탄 5.56㎜ 기관총 실탄을 무려 64발이나 훔쳐 집에서 보관하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현행법상 권총·소총·엽총·공기총·가스총 등 총기류와 폭약·화약·실탄 등 폭발물류, 도검·분사기·전자충격기·석궁·모의총포 등이 무기류로 분류돼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위험물을 소지하다 적발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폭약이나 화약과 같은 많은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물품을 소지하면 중형이 내려지기도 하지만 실탄만 소지하면 대부분 벌금형에 그친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 탓에 장난 삼아 전역 기념품으로 실탄 하나쯤은 챙겨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안일한 인식이 일부 전역병들 사이에 퍼져 있는 것 같다고 실탄 소지 탑승객을 조사한 경찰은 전했다.
그러나 군에서 빼돌린 실탄 등이 각종 테러나 중대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코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며, 군과 경찰의 허술한 총기류 관리를 강화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로 실탄 등 총기류를 반출하는 행위가 명백한 범죄라는 인식을 장병들에게 심어줄 필요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실탄을 소지했다가 적발돼도 범죄에 연루되지 않으면 대부분 벌금형 처벌에 그친다”며 “중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 관계자는 “실탄 등 총기류가 분실되면 부대 최고 책임자에게 즉각 보고가 이뤄질 정도로 군 내부에선 중대한 사고로 간주하고 있다”며 “총기류 분실 사고가 인명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총기 관리와 장병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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