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살인사건에 뿔난 여성계 “국가는 반성하라”

가정폭력 살인사건에 뿔난 여성계 “국가는 반성하라”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8-10-26 10:50
수정 2018-10-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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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 전화 등 여성단체, 29일 긴급기자회견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국가는 없다.”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 가정폭력에서 비롯된 끔찍한 결말이란 사실이 밝혀지자 여성단체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피해자 인권’보다 ‘가정 유지’에 초점을 둔 현행 법이 비극적인 사건을 낳았다는 것이다. 여성계는 “가정폭력범은 형사 처벌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며 법 개정 서명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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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법원은 “증거 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18.10.25  연합뉴스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법원은 “증거 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18.10.25
연합뉴스
여성인권실현을 위한 전국가정폭력상담소연대, 한국여성의 전화 등 여성단체는 오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을 연다고 26일 밝혔다. 이 단체들은 “가정폭력 가해자에 의한 여성 살해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국가 가정폭력 대응 시스템의 전면 쇄신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또 “최근 발생한 등촌동 살인사건의 분명한 수사와 엄정 처벌을 촉구한다”면서 지난 23일 피해자 딸이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린 청원에도 서명해달라고 덧붙였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아빠에게 사형을 선고받게 해달라”는 이 청원에는 이날 오전 13만 3000여명이 동참했다.

여성 단체들은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현행 법의 목적 조항인 제1조에는 ‘가정폭력범에 대해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지난 3월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이 법의 주요 목적을 피해자와 가족의 안전 보장에 둘 것’, ‘가해자 형사 처벌 보장’, ‘접근금지 명령 위반 시 체포 의무 정책 도입’ 등을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법령은 개정되지 않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 접수 건수는 2013년 16만 272건에서 지난해 27만 9058건으로 74.1%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검거 건수도 1만 6785건에서 3만 8489건으로 129.3% 늘었다. 다만 검거 인원 중 구속된 인원 비율은 여전히 1%대에 그친다. 혐의 부족으로 불기소되거나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체 가정폭력 사건 중 76.5%(지난해 기준)에 해당되는 폭행, 협박 사건은 피해자의 의사가 중시되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돼 혐의가 입증돼도 처벌이 어렵다.

가정폭력범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 등 임시조치도 현행 법은 과태료 규정밖에 없어 현행범 체포가 어렵다는 점도 가정폭력 사건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국은 ‘가정폭력 체포 우선주의’를 채택해 대부분 도시에서 적용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임시조치 위반 시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효과적으로 격리하기 위해서는 현행범 체포가 가능한 징역, 벌금형 조항과 유치장 유치 규정이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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