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성 대결 번진 ‘이수역 폭행’…“혐오 멈추고 차별 없애야”

또다시 성 대결 번진 ‘이수역 폭행’…“혐오 멈추고 차별 없애야”

강경민 기자
입력 2018-11-18 10:11
수정 2018-11-1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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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튀어나오는 ‘과격혐오’ 발언…“가부장 문화·피해의식이 원인”전문가들 “머리 맞대고 차별적 사회구조 개선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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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폭행’ 피해자로 주장하는 여성이 게시한 피해 증거사진. 2018.11.15 연합뉴스
‘이수역 폭행’ 피해자로 주장하는 여성이 게시한 피해 증거사진. 2018.11.15 연합뉴스
남성과 여성 일행이 주점에서 벌인 ‘이수역 폭행’ 사건이 남성과 여성 간 혐오로 번지면서 또다시 성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건 당사자인 여성은 상대 남성들에게 폭행당해 다쳤다며 여성 혐오(여혐) 범죄임을, 남성은 여성이 남성 혐오(남혐) 발언을 하며 시비를 걸고 먼저 손으로 때렸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이 반복되면서 사건 발생 5일이 지난 18일까지도 사건 실체가 밝혀지기는커녕 온라인을 중심으로 ‘남녀 갈등’만 커지는 양상이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서로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남녀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범죄로 이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혐오와 여기에서 나오는 보복성 행동은 더 큰 혐오와 갈등을 부른다. 상대에 대한 증오를 멈추고, 지금 같은 혐오를 가져온 원인과 잘못된 사회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되풀이되는 갈등을 끝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김치녀, 한남충…’ 온·오프라인 넘쳐나는 혐오

혐오(嫌惡)는 넓은 의미에서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하는 감정이다. 최근에는 개인 간 혐오를 넘어 여성과 남성이 상대를 겨냥한 사회적 혐오 등 집단적 혐오 표출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 발생한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 범죄로까지 이어진 여혐의 주요 사례로 꼽힌다. 당시 범행을 저지른 김모씨는 경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여성에게 자꾸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김씨 범행이 조현병에서 비롯됐다며 여혐 범죄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강남역 일대에서는 여혐 범죄를 규탄하는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여성 차별을 멈춰야 한다는 여성들의 움직임도 온·오프라인에서 본격화됐다.

여혐 표현은 2010년대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 인터넷을 중심으로 많이 사용됐다.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은어)에 더해 여성의 성기마저 비하하는 용어들이 등장했다.

일베에서는 여성 사진을 게시해놓고 집단으로 조롱하는 일도 적잖게 있었다.

여혐에 대한 거부감과 여성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여성들이 길거리로 나와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여성들은 남성들의 행위에 대한 ‘미러링’(의도적 모방행위)이라며 여혐 표현에 대응하는 남혐 표현을 인터넷과 집회 등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여성이 가해자였던 ‘홍대 누드모델 몰카사건’ 수사가 편파적이라며 수만 명의 여성들을 거리에 모이게 한 ‘혜화역 시위’에서는 극단적인 구호가 나오기도 했다.

남성 혐오 사이트 ‘워마드’에는 ‘한남충’(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은어) 등 남성 비하 용어들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렸다. 홍대 몰카사건의 사진이 처음 유출된 곳도 워마드 게시판이었다.

이수역 주점 폭행 당사자로 추정되는 여성들이 남성 성기를 일컫는 비속어를 사용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혐오 논란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김치녀’, ‘한남충’ 같은 단어가 대표적인 혐오 표현”이라며 “온라인을 넘어서 오프라인에서 혐오 발언들이 나타나며 이수역 폭행 사건 같은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 “혐오 멈추고 구조적 원인 함께 풀어가야”

남녀 갈등으로 번진 이수역 폭행사건을 계기로 혐오 표현이 횡행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서로를 매도하는 집단적인 혐오 표출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혐오에 집착하는 것은 병적인 현상”이라며 “”남혐이나 여혐 등 모든 극단적인 혐오를 멈춰야 한다. 남혐은 괜찮고 여혐은 안 된다는 것은 오해와 오류에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혐오를 표시하는 과격 발언이 잘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라며 ”‘혐오를 혐오한다’, ‘혐오를 혐오로 대응한다’는 자가당착이다. 과격한 혐오 표출은 모두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차별받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혐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 권위주의적 문화, 부실한 청소년 교육, 어려운 경제 상황 등 다양한 요소가 혐오를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혐, 여혐으로 갈라서서 서로 대결해서는 안 된다“며 ”서로에 대한 혐오를 멈추고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문제의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항섭 교수도 ”여성들은 사회적 차별 속에서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남성도 자신들을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여성의 시선에 피해자라고 느낀다“며 ”서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혐오와 문제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에서 다른 집단, 세대, 성별에 대해 자존감을 해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근본적인 경쟁 풍토부터 바꿔야 혐오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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