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할 슬픔, 이별로 묻어둡시다” 서로 보듬어준 자살유가족들

“말 못할 슬픔, 이별로 묻어둡시다” 서로 보듬어준 자살유가족들

강경민 기자
입력 2018-11-18 15:20
수정 2018-11-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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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자조모임 ‘세계 자살유가족의 날’ 행사

“아픔과 슬픔, 상실도 우리 삶의 일부분이고 이제는 이별을 받아들여 그다음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말 못 할 슬픔으로 괴로움을 겪는 자살유가족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18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는 ‘2018 세계 자살유가족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자조(自助) 모임인 ‘자살유가족×따뜻한 친구들’이 주최했으며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숨죽이며 살아온 자살유가족 30여명이 참여했다.

세계 자살유가족의 날을 맞아 자살유가족 당사자들이 직접 기획·주최하는 행사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한해 최소 8만 명 이상의 자살유가족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가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보다 8.3배가 높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으나, 국내 자살유가족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자살유가족들은 그동안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었던 가족의 죽음을 털어놓으며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함께 낭송하며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곳곳에서는 오열이 터져 나왔다.

30대 남성인 이모씨는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라는 구절이 크게 다가왔다”며 “고통까지 인정하면서 함께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40대 여성은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며 “햇살이 마치 희망처럼 느껴진다. 언젠가는 제 상처도 치유되고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고 붉은 눈시울로 말했다.

또 이번 행사는 ‘생명의 연결 바느질’, 영상 감상과 이야기, 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가족들은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뒀던 슬픔의 기억을 용기 내어 이야기하고 ‘살아 남아줘서 고맙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유가족이자 ‘자살유가족×따뜻한 친구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혜정씨는 “우리 사회는 자살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가족들에게 충분한 애도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며 “자살유가족의 공감과 따뜻한 연대를 위한 자조 모임 프로젝트를 전국으로 확대해나가기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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