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 사법농단 의혹이 알려지는 시작점이 된 이탄희(41·사법연수원 34기) 수원지법 안양지원 판사가 이달 초 법원에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탄희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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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희 판사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존경하는 모든 판사님들께”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이 판사가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은 직후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여는 학술대회를 견제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것이 사법농단 의혹의 시작이었다. 11일 만에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돌아간 이 판사를 두고 부당한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고, ‘판사 블랙리스트’ 등 의혹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 판사는 코트넷 글을 통해 먼저 “1월 초에 이미 사직서를 제출하고도 말씀을 드릴 수 없어 마음(을) 앓았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분들이 그랬듯이 단 하나의 내 직업, 그에 걸맞은 소명의식을 가진 판사가 되고 싶었다”면서 “지난 시절 행정처를 중심으로 벌어진 헌법에 반하는 행위들은 건전한 법관 사회의 가치와 양식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회상했다.
뜻대로 되지 않은 결과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 판사는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끝없는 노력과 희생을 요한다는 것을 그때는 다 알지 못했다”면서 “한때는 ‘법원 자체조사가 좀 제대로 됐더라면…’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 판사는 동료 법관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이 판사는 “시작만 혼자였을 뿐 많은 판사님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면서 “과정을 만든 한 분 한 분 모두 존경한다”고 썼다. 또 이 판사는 “판사가 누리는 권위는 독립기관으로서의 권위”라면서 “미래의 모든 판사들이 독립기관으로서의 실질을 찾아가길 기원한다”면서 글을 마무리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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